연출의도
결국 타자의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 속, 뱅갈어 대사의 자막 없음은 의도된 연출임.)
외국인 노동자 비두는 어느 날 버스에서 핸드폰을 줍는다. 주웠다기보다는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그에게 맡겨진 것이다. 어쨌든 그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비두는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지 못한다.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대신 그는 문득 생각난 고향의 부모님과 장시간 통화를 한다. 그리고는 전화통화를 한 대가로 한국 사람에게 진탕 욕을 먹는다. 얼마 후 달려간 식당엔 밥이 없다. 비두가 처한 상황과 그의 행동이 답답하다. 하지만, 감독은 최소한의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을 다소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당장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이다. 이 작품 역시 그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 심지어 우린 그들이 하는 말조차 들을 수가 없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우리끼리 떠드는 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타자의 시선으로 타자를 바라보는 묘한 시점의 교란이 엿보인다.
(2003년 제29회 서울독립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