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를 가진 소년 영우는 할매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동생처럼 아끼던 강아지 복순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영우는 틈만 나면 복순이를 찾아 집을 나간다. 할매는 영우를 두고 외출해야 되는 날이면, 혹여나 영우가 또 집을 나가 길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 끈으로 아이를 묶어 둔 채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영우를 묶어둔 끈이 풀리고, 자유의 몸이 된 영우는 복순이를 찾아 밖으로 나가는데... (2016년 제9회 서울노인영화제)
연출의도
일상적이고 만성적인 비극.
작품해설
발달장애인 영우에게 있어 세상은 좁은 단칸방과 할머니 그리고 이제는 세상에 없는 강아지 복순이 뿐이다. 영우는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세상과는 다른 공간, 다른 빛,다른 공기속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한편, 또 다른 죽음과도 대면하게 된다. "장애"가 차별과 고립이 되는 사회구조속에서,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맞닿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2016년 제21회 인천인권영화제/ 인천인권영화제 소금활동가 수진)
영화와 인권
할머니와 아빠, 영우 세 식구는 가난한 밥상이지만, 셋은 웃으며 맛있게 밥을 먹는다.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내 걱정 마라 부양의무제 폐지되어서 가난한 너와 상관없이 내 몸 아픈 것 치료 받을 수 있다.’ 영우가 말한다. 활동보조인과 산책하고 오면서 들른 개 카페를 설명한다. ‘그곳에는 예쁜 복실이 많아.’ 아버지도 말한다. ‘어머니도 영우 걱정 마시고 요양사와 병원도 잘 다니시고, 영우도 활동보조인과 외출할 수 있으니 제가 마음 놓입니다.’
나는 세 식구 얼굴에 지어진 미소를 상상해본다. 이런 상상이 이루어지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그런데, 내 머릿속에 각인된 현실은 작년 서울 마포구에서 정신장애 아들 둘과 살던 노모가 아파서 입원한 사이 동생이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광화문역 지하 1층에서 3년 동안 농성을 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 줄을 잡고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제와 장애인의 삶을 틀어잡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투쟁하여 왔다. 전국의 장애인들이 광화문농성장으로 와서 뼛속까지 시린 찬바람을 맞아가며, 때로는 뜨거운 여름날 모기에 물려가며 그렇게 지켜왔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여전히 영우가 계속 묶여 있다. 이 순간에도 장애등급제 때문에, 부양의무제 때문에 사회복지 사각지대의 늪에서 쓰러진 할머니와 개목걸이에 묶인 영우가 있다. 사람보다 조건이 우선인 사회보장제도 그리고 이웃의 차가운 무관심이 가난한 사람과 장애인을 죽어가게 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소망하는 우리의 희망을 놓을 수 없어 <영우>를 개막작으로 선정하였다. 절망의 ‘영우’에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움직임을 주기에 시작의 의미인 개막으로 영화제 문을 연다. 과연 누가 언제 이들을 발견할 것인가. 영우의 발목에 묶인 사슬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묶여 있는 영우의 현실이지만 이 사슬을 끓을 수 있는 것도 포기하지 않고 투쟁할 수 있는 우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다. 우리가 해야 한다. 틀림없이 우리이다. (2016년 제1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박김영희 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