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감기(Half-life)는 방사성 물질이 가진 방사능이 원래의 절반이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후쿠시마 지역의 방사능이 언제쯤 완전히 없어질지는 알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후쿠시마에는 나오토가 꾸린 삶의 터전이 있다. 그가 기도를 드리던 바다, 함께 살아오고 돌봐온 소와 고양이, 산책 가던 숲과 사람이 가득하던 거리. 나오토는 이 공간을 벗어나 지속되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후쿠시마에 남았다. 하지만 그가 남은 후쿠시마는, 이전과 다르다. 그의 집은 방사능 제거 작업의 대상이고, 그의 땅에서 나오는 농작물은 아무도 먹을 수 없다. 이웃은 다 떠나갔으며, 거리는 고요하고, 전철이 오가던 역사에는 수풀이 무성하다. 방사능과 함께 후쿠시마에는 나오토와, 그의 공간과 삶이 남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이전과 같지 않고, 같을 수도 없다. (2017년 제22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유영)
작품해설
2011년 3월 11일 이후 후쿠시마는 이전과 전혀 다른 소리를 담게 되었다. 이제 후쿠시마에서는 ‘위험 안내 방송’이 일상의 소리이다. 안전하다던 원전은 후쿠시마를 전부 바꿔놓았다.
나오토는 규슈전력이 센다이 핵발전소를 재가동한다는 뉴스를 본다. 규슈전력은 이번에도 안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안전은 누구의 삶을 담보로 한 안전일까. 우리의 전기는 누구의 위험 위에 서 있는 편리함일까. 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어떤 위험들을 감수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제 후쿠시마에서 위험한 것은 원전만이 아닌, 후쿠시마 그 자체가 되었다. 후쿠시마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은 위험물로 표시되어 처리되고, 후쿠시마의 버섯은 맨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후쿠시마를 알던 존재들은 이 공간이 위험한 곳이 되리라 상상한 적 없었다. 또한, 후쿠시마의 그 어떤 생명도 자신이 방호복을 입고 대해야 하는 존재가 될 줄 몰랐다. 나오토 또한, 자신의 삶이 위험을 감수한 대단한 삶이 되기를 바란 적 없었다.
나오토는 그곳에서 살아왔기에, 그곳에서의 삶을 이어나간다. 위험해진 후쿠시마에서, 위험하다고 평가받게 된 삶을, 나오토는 계속 살아간다. (2017년 제22회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