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드라마 감독 박홍준
러닝타임 13분 국가 한국 평점 10 조회수 오늘 1명, 총 54명
줄거리
자취를 시작하게 된 선미, 넉넉지 못한 예산으로 방을 구하다보니 반지하방을 구하게 된다.
반지하방 창 너머로 보이는 낯선 풍경, 그리고 벽을 넘어 들어오는 낯선 공간의 소음들.
선미에겐 이 모든 것이 새롭기도, 그리고 한켠으로는 불쾌하기도 하다.
그러던 중, 멀리서 어릴적 동네에서 들었던 것 같은 찹쌀떡 장수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선미는 괜히 반갑다.
그러나 창 앞에 이내 어떤 그림자가 서성거린다.
(2017년 제19회 부산독립영화제)
연출의도
우리는 의도치 않게, 조그마한 부주의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며 살아간다. (물론 의도하고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가해자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피해자도 그에 대해 크게 저항하지 못한 채, 쌓여가는 조그마한 불편함들. 그런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었다. 스스로도 수없이 저질러왔을 조그마한 폭력들에 대해.
프로그램 노트
시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삿날〉은. 영화에는, 독특한 방식으로, 복수의 시선이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를 관통하는 훈풍(?) 같은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태도(?)일까? 각 부문(연출, 연기, 촬영, 녹음 등)의 합이 만들어낸 무언가 일까? 고민의 정도일까? 아니면 단순 성향 내지 취향의 문제? ‘인지하지 못했던, 내가 행사했던 폭력’이 〈이삿날〉에는 등장한다. 영화가 자신만의 호흡으로 촘촘히 그려내는 상황은, (어쩌면 현실에서 종종 그러하듯,) 기존의 (소위 여성주의) 담론으로는 일의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어떤 곤란함을 안겨준다. 그 곤란함 앞에서, 말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 가운데, 먼저 달하는 것은 어떤 감정이다.
그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삿날, 형광등을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밖에서 자신의 반지하방 창을 들여다보며 서있던 선미(박세재 배우)는, 창살을 통해 창문을 닫는다. 이렇게 낮에 닫힌 창은, 비와 ‘찹쌀떡~’ 소리가 반가운 선미에 의해, 밤에 안으로부터 다시 열린다. 그러나 얼마 후 누군가의 그림자가 창 앞에 서성이자, 놀란 선미는 불을 끄고 다시 창을 닫는다. 그 누군가가, ‘미안합니다’ 말하고 떠난다. 영화는 선미의 얼굴에서, 짧게, 버티다 끝난다. 이삿날>은 드라마적 구조나 간명한 목적의식에 기대지 않는다. 영화 전반에 걸쳐, 선미의 부풀었다가 쪼그라드는 마음을 밀도 있게 묘사하며 따라간다. 동시에, 무지도 권력일 수 있다는 말에 대한 반성처럼, 영화는 복수의 시선을 통해 알고자 노력하는 것만 같다. 다른 누군가의 입장/시선이 되어 보고, 역으로 상대의 입장/시선이 되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전지적 시점에서 상황을 비추기도 한다. (도입부의, 불특정 공간/공중으로부터 사선으로 이동하는 카메라나, 부감으로 비추는 찹쌀떡장수의 첫 등장 컷이 흥미롭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상황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누군가의 안타까움, 선의, 미안함, 응원, 의지 같은 것들을 본 것만 같다. (2018년 제23회 인디포럼/ 이완민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