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얀 우물 속은 텅 비어 있고 동시에 가득 차 있다. 관객의 예측 불가능한 선택은 정보가 되고, 확률은 카메라를 응시한다. (2018년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 노트
어쩌면 예술에 있어 현존과 재현의 일차적이고도 최종적인 무대는 인간의 몸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몸은 자기표현의 방편, 상징과 기호, 문화적 인덱스. 혹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증명. 몸의 재현에 대한 영화적 접근을 아방가르드 영화의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이 지면의 몫을 넘어서는 일일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 여기에 도착한 몇 가지 몸의 현현을 살펴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백종관은 안무와 무용수의 퍼포먼스를 자신의 연출작의 중심 혹은 소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간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퍼포먼스 기록영상인 <윤슬 사용법>(2017), 특정 퍼포먼스가 계기가 돼 영상 작업으로까지 진행된 <극장전개>(2014), (2017), <#cloud>(2018), 영화 작업을 위해 의도적으로 퍼포먼스를 구상한 <허구와 증언>(2016), (2017) 등이 있다. 신작 <#cloud>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공연의 현재성에 대해서 묻는 것 같다.
영화 속 공연은 2016년 안무가 나연우의 공연 <오늘의 공연>으로 백종관은 그 현장을 기종과 상태가 다른 세 대의 카메라(심지어 한 대는 고장난 카메라다.)로 촬영했다. 공연의 퍼포머들은 관객에게 미리 준비한 질문을 보여주고 관객이 할 법한 리액션을 예상해 그에 따른 몇 가지 리액션만을 준비하고 공연에 임한다. 모든 게 열려 있는 상태의 공연이다. 관객이 공연장에 머무는 시간보다 관객이 없는 텅 빈 시간이 더 많은 공연. 과연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은 무엇이며 지금 여기의 카메라가 찍는 건 또 무엇인가. <#cloud>는 비어 있는 상태만으로도 공연이 될 수 있으며 공연장은 이미 이 공연의 데이터 저장 방식인 ’cloud’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순간, 처음부터 공연장 바닥에 희미하게 보이던 흰색 선이 점점 선명해지더니 이동하는 기차의 창문틀이 된다. 가시화되지 않았다 뿐, 혹은 우리의 시각과 인지가 미처 정보화하지 못했을 뿐 창문의 틀은 이미 공연장 그곳에 있었다. 기차와 창, 빛과 어둠의 풍광이 담긴 이 영상은 백종관이 일본에서 촬영한 <겟츠와루>(2017)의 일부다.
<허구와 증언>은 여러 겹의 레이어에 의한, 그에 관한 영화다. 조도가 낮은 공연장. 두 대의 빔 프로젝터를 이용해 장 뤽 고다르의 <작은 병정>(1963)이 스크린에 투사되고 그 스크린 앞에서는 무용수의 안무가 시작된다. 프로젝터의 위치를 의도적으로 달리 둠으로써 스크린 위에는 두 편의 <작은 병정>이 동시 상영되고 이미지는 그 자신의 잔상을 그림자처럼 갖게 된다. 그런 스크린 위로 무용수의 그림자가 겹쳐지기도 한다. 현존하는 무용수의 육체 뒤로, 아니 육체 위로 층위가 다른 이미지의 잔상이 연속적으로 중첩된다. 심지어 카메라는 서서히 이 공연 영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스크린 앞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이 스크린에는 앞서 본 공연이 상영 중이다. 가만히 그 영상을 보던 관객(앞선 공연의 무용수다.)은 자신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스크린 속 영상을 찍기에 이른다. 겹겹의 레이어로 구성된 하나의 이미지가 최종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에 남는다. 현존과 재현이라는 겹겹의 그물망을 통과해 눈앞에 도착한 이미지의 포착이다. 영화는 이것이야말로 허구(픽션)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라고 증언하고 있는가. 혹은 이것은 허구(픽션)라고 증언하는 것인가. (2018년 제23회 인디포럼 / 정지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