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으로 입는 팬티가 길에 떨어져 있었을 때 해 볼 수 있는 상상들을 재미있게 담아봤다.더 나아가서 남, 여의 관점 차이와 고착된 성 역할 문제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18년 제23회 인디포럼)
프로그램 노트
아스팔트? 안 궁금하다. 팬티? 안 궁금하다. 허나, 아스팔트 위에 놓여진 팬티? 아아 궁금하다. 미치도록 궁금하다. 함께 있지 않아야할 것이 함께 있는 저 초현실주의적 조합이 어떤 연유로, 어떤 경로로 저 지경에 이르렀는지 너무도 알고 싶다. 궁금해 미치겠다. 특히 남자가 궁금하다. 팬티는 빨간 색, 게다가 레이스도 달렸다. 야하다. 야하니 경로도 야할 것이다. 경로가 야하다면 주인도 야하다. 다 야하다. 야호. 야하다. 여자는 다른 식으로 궁금하다. 팬티는 널브러져 있다. 게다가 찾아가지도 않았다. 살인사건? 위험하다. 경로도 위험하니 주인도 위험에 처했을 게 분명하다. 위험하다. 꺄악. 위험해. 한 폭의 초현실주의 그림은 이렇게 남성성-여성성에 대한 화두로 비화되어 가며, 팬티의 주인이 도대체 누구냐는 애초의 문제는 팬티의 주인이 누구일 꺼라 상상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는 문제로 변질되어 간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비집는 변질이다. 팬티 한 장에서 시작된 언쟁은 남자가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를 끄집어내고, 여자가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를 끄집어내며, 때 아닌 페미니즘 논쟁일세라. 설거지 당번이 누구며, 변기사용법이 어쩌며,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 되며. 팬티 한 장이 이렇게 무섭다. 무의식에 묻어둔 온갖 자세들, 태도들, 비전들을 모두 끌어올리는 그것은, 차라리 폭탄이어라. 빨간 팬티폭탄이어라. 레이스는 뇌관이었나. 빨간 색은 장약이었나. 그러나 감독의 팬티폭파공법이 단지 성역할에 대한 문제제기용 위악이었다고만은 볼 수 없다. 진짜 문제는 팬티폭탄의 폭풍이 가시고 난 뒤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결국 팬티의 진짜 용처가 밝혀지는데- 그건 바로 바로... 아. 스포일할까 말은 더는 못하겠으나. 오래도록 남을 문제일 터다. 성역할이 분화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닌 것도 아닌, 강요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생한 것도 아닌, 그 소꿉폭탄. 너야말로 도대체 누구냐. 아스팔트 위 팬티보다 더 초현실적인 우리네 세상아.. (2018년 제23회 인디포럼 / 김곡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