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봉으로 이사를 왔다. 동생과 함께 짐을 정리하던 중 대화를 나눴고, 불평등을 느꼈던 실제 장소들을 다시 마주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장소들이었다. 그 외에도 이사, 알바, 일상 등 여성 혐호로 인한 영향은 내 삶 곳곳에 숨어있었다. 나만의 이야기이면서도 모든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한 다큐멘터리이다. 나는 왜 이 곳에서 살고 있을까? (2018년 제23회 인디포럼)
프로그램 노트
하영, 하은 자매가 짐을 나르고 있다. 언니 하영이 새로 구한 자취집으로 이사를 하는 중인 것이다. 좁지만 깔끔한 원룸에 짐이 하나 둘 쌓인다. 짐 정리를 하는 하영을 지켜보던 동생 하은이 입을 연다. “돈을 좀 더 들여서 다른 동네로 이사 가는 건 어때?” 모텔들로 가득 찬 집 주변 거리가 영 안심이 안 되는 탓이다. 하지만 “돈을 좀 더 들인다”는 것이 간단한 문제일 리 없다. 피팅 모델을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하영에겐 이 정도 깨끗한 방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스터스룸〉은 2018년 대한민국에서 청년 여성이 경험하는 문제들의 레이어를 짧은 다큐멘터리 안에 다층적으로 쌓아올린다. 주거 문제, 노동 문제, 성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남성 파트너와 소통하는 문제, 그리고 안전의 문제까지. 이런 고민들 안에서 하영과 하은의 일상적인 공간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지금까지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존재했던 공간들이 여성의 관점에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그 공간들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여성의 삶을 결정짓는 다양한 조건들과 공간을 고민하는 이 작품이 강남역 10번 출구와 수 노래방을 응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 이후로 여성들은 한국의 거리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변화를 위한 싸움 역시 시작했다.
〈시스터스룸〉이 그런 변화의 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터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꾸로 떨어지는 모래시계는 이 여성들의 고군분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 차별과 폭력의 공간을 전유하여 해방의 공간으로 바꿔낼 수 있을까. 현실을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상력은 과연 가능할까. 그리하여 위험한 세계에서 내 한 몸 누일 ‘자매의 방’은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까. 〈시스터스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더 깊이 숙고되기를 기대한다. (2018년 제23회 인디포럼/손희정 (영화평론가)
리뷰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이라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는 모호하다고?’ <씨스터스룸>은 여성 사적 다큐멘터리를 논할 때 있어 언제나 중요했던 두 가지 명제를 오늘날의 버전으로 업데이트한다. 지금 막 마지막 이삿짐을 옮긴 한 여성의 자취방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의 동생이 언니의 짐 정리를 도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는 이들이 방금 옮긴 마지막 상자 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관객은 한정적인 시각으로, 약간은 몰래카메라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위치에서 고립된 채 이들의 말을 엿듣게 된다. 지방 고교생인 동생은 언니가 왜 모텔로 둘러싸인 위험해 보이는 곳에 싸다는 이유로 자취방을 얻었는지 의아하고, 언니는 약간은 짜증 나는 투로 ‘너도 곧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한다.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와 강남역 10번 출구, 성폭행 범죄로 이어지는 이들 대화의 의도적인 궤적은 곧 여성 일반이 처한 사회적 위험에 관한 코멘트다. 범죄의 기억과 이에 관한 두려움이 여성들을 외곽으로, 장소가 아닌 장소로 몰아대고 있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 모래시계가 거꾸로 상승하며 카운트를 시작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위한 시간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2018년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김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