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경마 판에 들어선 사람과 경마를 전문적으로 하는 예상가들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경마를 들여다본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고, 달리는 말들은 또 무엇인가? (2018년 제23회 인디포럼)
프로그램 노트
일면 경마장 입문서처럼 시작해 어느 순간, 아슬아슬한 베팅을 하듯 놀라운 변모를 꾀하는 다큐멘터리다. 처음 카메라는 경마장을 지탱하고 있는 존재들을 비춘다. 무심코 바라본 듯하지만, 카메라에 잡힌 존재들의 움직임엔 이상하게도 매 순간 비장한 기운이 감돈다.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말, 경주를 중계하는 PD의 기계적인 움직임, 연신 달리고 있는 경주마들을 나른하게 패닝하며 좇아가는 카메라가 저곳에 있다. 경마장의 일상적인 모습일 텐데도, 낯선 풍경이라 그런지 편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 저곳은 마치 다른 세상의 논리로 작동하는 세계 같다. 분명 말보다 사람이 많은 공간일 텐데 사람이 아니라 말이 중심에 서 있는 세계처럼도 보인다. 사실 말은 질주할 뿐이다. 다만 그 질주의 둘레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들이 사람들의 들끓는 욕망을 배제하고는 설명될 수 없기에 비장해 보이는 것일 테다. 달리는 건 강인한 생명체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어떤 판단도 섣불리 내리지 않는다. 일련의 장면들이 지나가고 나면 합법적으로 승인된 욕망을 마음껏 즐기고 있는 이들의 인터뷰와 그곳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감독은 절묘하게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유심히 듣고 기록하되 어떤 가치 판단도 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발휘하면서 말이다. 그리고선 드디어 우리들의 의식을 혼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단연 압권인 장면들을 내어 놓는다. 일순간 영화의 결을 바꿔놓으며 눈길을 낚아채는 이 장면들이 등장하면, 도대체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어 질 지경이다. 여기엔 오직 경주마의 질주와 충돌과 무심한 풍경들이 빚어내는 역동적인 운동과 리듬이 있다.
감독은 이렇듯 철저히 영화적인 산물을 아무렇지 않게 저곳의 현실 사이에 끼워 넣는다. 그건 분명 도박이다. 그렇긴 한데 매우 현명하고 효율적인 도박이다. 이 장면들은 결국 이제껏 감독이 발휘하던 의지의 산물들이 지녔던 것보다 더 강력한 충격으로 우리의 의식에 균열을 낸다. 그렇게 〈원수를 경마장에 데려가라〉는 경마장의 풍경들을 그곳의 작동원리를 닮은 방식으로 담대하게 구성하되, 그곳을 지탱하는 존재들의 생태를 섣부른 판단 없이 기록해 낸다. (2018년 제23회 인디포럼 / 홍은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