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부터 1957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오랜기간 지속된 나환자 격리지로 알려진 그리스의 스피나롱가 섬,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 ‘수용’과 ‘격리’의 역사 앞에, 이 작품이 던지는 이미지는 한 사회가 감추고 싶어하는 일종의 부패의 표식과도 같다. 1901년 그리스에서 공식적으로 법령이 통과되고 1903년 부터 이 섬에 사람들이 격리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 그리스의 내부 상황으로 인해 스피나롱가 섬의 삶은 극도로 궁핍한 환경에 처해있었는데, 환자들은 스스로를 위한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 낼 수도 없었으며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1936년 나병에 걸린 20대 초반의 젋은 법학도인 에파미논다스 레문다키스 Epaminondas Remoundakis(1914-1978)는 정부에 대한 청원활동과 나병환자들과의 연합을 결성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스피나롱가 섬에는 극장과 학교가 설립되었다. 1957년까지 남아 있던 마지막 환자들은 당시 아테네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당시 이 섬에 격리된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에, 수용소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단테의 정문’이라 명명되었다.
이 섬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헤어조그의 단편으로 부터 텔레비전 시리즈, 영화, 문학 등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팔라조의 지적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는 난파선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그리스 극장에서 어떤 예기치 못한 고통이 무대에 올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체제가 가진 권력에 대한 의지가 야기시킨 것들에 대한 예상치 못한 방식의 기록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전염병으로 인해 생명의 징벌인 ‘재활’이라는 굴욕을 당하고 있는 자들의 육성과 함께 죽음 조차 비난받을 수 밖에 없는 삶 속에서 완전히 시력을 상실한 레문다키스가 폴레의 카메라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이러한 대상을 다루는 작품이 제시하는 공포나 연민이라는 감정적 소환을 넘어선 대화적 중립지대로 우리를 이끌어 낸다.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던 사회학자인 모리스 본은 1972년 레문다키스의 생생한 육성을 녹음 및 번역하여 나병의 역사화 과정과 종교적/이데올로기적 선입견과 사회적 작용에 관한 다양한 에세이를 함께 수록하여 2015년 출판하였다.
(2018년 제15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줄거리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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