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문이 반쯤 닫힌 가게 안에 한 남자가 있다. 손님도 찾아오지 않는 이 공간에는 ‘보성타일 인테리어’라고 적힌 간판과는 다르게 캔버스와 미술도구, 그리다 만 그림들이 놓여 있다. 남자는 매일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이곳에 머물며 캔버스에 붓질을 하거나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 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과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일부분이 되기도 하고, 셔터문 밖의 세상과 그를 단절하게도 만든다. 여름에서 가을로, 겨울에서 봄으로 흘러가는 세상의 계절과 다르게 그의 시간은 알 수 없는 곳을 떠다닌다. 영화는 의심과 다짐이 교차하는 그의 시간들을 이 작은 공간 한편에서 찬찬히 지켜본다. (2019년 제7회 무주산골영화제)
리뷰
돌이켜보면, 예술은 예술 또는 예술가에 대한 판타지를 스스로 생산하면서 스스로 강화해왔다. 그러나 모든 예술은 기본적으로 육체노동에 가깝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주방에서 커피를 데워 큼직한 머그잔에 따르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소설을 쓰는 일을 매일 반복하는데, 장편소설을 쓸 때는 하루에 200자 원고자 20매씩을 규칙적으로 또는 기계적으로 쓴다고 한다. 더 쓸 수 있어도 20매를 쓰고, 도저히 쓸 수 없을 때도 어떻게든 20매를 채운다고 한다. 여기 하루키처럼 규칙적으로 작업을 하는 전업 화가가 있다. 이재헌 화가. 그는 인간의 내밀한 고민과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실존을 탐구해 온 화가다.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아들의 시간>(2014)으로 주목받았던 원태웅 감독의 세 번째 다큐멘터리 <나의 정원>은 이재헌 화가의 전업 화가로서의 일상을 담는다. 그는 아침이 되면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보성타일 인테리어’라는 간판이 달린 작업실에 매일 출근한다.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 퇴근할 때까지 작업실에 머물며 그림을 구상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통화하거나, 먹거나, 쉬거나, 낮잠을 잔다. 원태웅 감독은 낮에서 밤으로, 봄에서 겨울로, 그리고 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직업 화가의 소소한 일상과 함께 이재헌 화가의 작품들이 스케치 되고, 채색되고, 결국 완성될 때까지의 과정을 담아내면서 여기에 이재헌 작가의 복잡한 내면과 예술적 여정을 형상화한 상상의 이미지들을 연결한다. 부분적으로 하룬 파로키의 단편 <자라 슈만의 그림 Image by Sarah Schumann>(1978)을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매일같이 자기 확신과 자기 의심 사이를 오가는 한 직업 화가의 일상과 내밀한 내면,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어딘가를 부유하는, 감독에 의해 이미지화된 예술가의 상상, 그리고 그의 창조적 예술 세계를 한꺼번에 그리고 입체적으로 엿보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감히 올해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제7회 무주산골영화제)
연출의도
넓게 보았을 때 예술가의 삶은 일반인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생산적인 활동의 결과물을 재화의 가치 유무로 따지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다르게 보았을 뿐이다. 연출자는 예술가를 특별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 따라서 인물이 예술가인 것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한 개인의 삶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예술가의 진술을 토대로 작가/작품론을 다루는 것과 달리, 엇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을 큰 줄기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서 보편적인 삶 속에서 어떻게 예술이 자리하고 있는지, 과연 예술가의 삶이 특별한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