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뮤지션의 기상천외한 활동상을 근접촬영한 <노후 대책 없다>(2016) 의 이동우 감독이 종로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숙자를 주인공으로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아침부터 취해서 이동우 감독에게 돈을 뜯어내는 걸로 첫 등장한 이 남자는 유치장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브레송, 오즈, 하길종을 입에 올리는 수상쩍은 인물이다. 여러모로 대책 없어 보이는 그는 <자화상 2000>이라는 단편영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와 클레르몽페랑단편영화제에 초청된 적이 있다 한다. <셀프-포트레이트 2020>은 기묘한 우정의 기록이다. 가난한 청년 영화감독이 20년 전 어느 유망한 청년감독에게 보내는 존중(오마주)의 영화이자 그가 실패한 자리에서 이동우 감독이 해낸 두 번째 작품이다. 두 명의 감독, 두 편의 영화, 그리고 더 없이 멋진 엔딩 크레딧. (2020년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강소원)
연출의도
나는 나를 바라보는 나를 바라본다.
리뷰
2017년 12월, 이동우 감독은 우연히 노숙자 이상열을 만났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고 이상열과 세번째 마주친 날부터 함께 막걸리를 마셨다. 그런데 그냥 술주정뱅이에 노숙자인 줄 알았던 이상열이 놀라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20년 전쯤 방송국을 그만두고 36살에 완성한 단편영화가 베니스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받은 적이 있다고. 그러면서 언젠가 두 번째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게 다큐 감독 이동우와 영화감독 출신 부랑자 이상열의 기묘한 우정이 시작된다. 이동우 감독이 이상열에게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이런저런 도움을 주기 시작했던 건 ‘이 사람 느낌이 딱 내 미래’였기 때문이다. 이동우 감독은 초반에 이상열이라는 인물에 대한 주요 정보들을 주로 자막으로 오픈한 다음 이상열의 다음 영화 만들기를 실패하는 과정과 고단한 삶을 배치한다. 그리고 이상열이 연출한 단편영화 <자화상 2000>을 쪼개 이 영화의 입구와 출구로 활용함과 동시에, 도박에 중독되어 가는 단편영화의 서사와 주인공을 이상열의 일상과 병치시킨다. 이상열의 영화 위에 자신의 영화를 포개놓는 것이다. 카메라가 늘 이상열의 곁에 있을 수 없으므로, 이 영화는 이상열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 이상열에 관한 영상과 음성 재료들의 조합하고 조립하여 담아낸 이상열에 관한 영화에 가깝다. 이동우 감독이 우정으로 완성한 영화이자, 오랜 친구 또는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따뜻한 편지이기도 하다. 영화감독 출신의 부랑자 이상열은 차기작 만들기에 실패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감독 이동우는 그 실패를 재료 삼아 차기작을 완성했다. <성적표의 김민영>이 사라지는 우정에 대한 연가라면, 이 다큐멘터리는 우정으로 만들어낸 헌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