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틸라는 제네바에서 20년 넘게 불법이민 가사 도우미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딸을 잃은 후, 그녀는 자신이 전례 없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정함을 깨닫게 된다. (2020년 제18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흔적〉은 소리에서 출발한다. 바람에 날리는 풍경 소리, 전화 녹음 소리, 나이 든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주 노동자 도미틸라는 스위스로 건너온 후 자신의 삶을 담담하고 차분하게 들려준다. 23년간 미등록 이주 노동자로 살면서 각종 일을 했고, 지금은 부유한 집에서 가사 노동을 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20년 이상 일하고 터전을 두고 살지만 그녀는 의료보험이나 연금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딸이 살아 있을 때는 잠시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희망이 절망으로 급변하고 지금은 자신의 존재가 흔적조차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영화는 이주한 거주국에서 등록되지 않는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기보다는 차분하고 정제된 그녀의 말과 공간 속에 응축된 감정으로 담는다. 도미틸라의 말은 노동 공간인 집 내부를 부유하고, 영화는 오브제를 비추다 간간이 그녀의 모습을 희미하고 파편적으로 비춰낸다. 그녀는 공간에 물적 존재감을 가지기보다는 마치 공간의 오브제처럼, 공간의 목소리처럼, 가사 노동처럼, 사라지는 흔적으로 존재한다. 아니 흔적조차 사라져 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모든 것을 응축한 가장 시적이며 뭉클한 순간이다. (2021년 제9회 디아스포라영화제/ 이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