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시간 동안, 두 여성은 모든 요구가 충족되는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한 여성은 걷고, 또 다른 여성은 집을 지킨다. 만난 적 없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우연히 서로를 마주한다.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우정을 찾으려 노력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선택들에 대한 철학적인 영화. (2021년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세실리는 걷고 리디아는 집을 돌본다. 그러던 두 사람이 만난다.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왜,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이 세계에서 둘은 걷고, 집을 돌보는 각자의 역할을 계속해왔고, 둘 다 전에 누군가를 만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세실리가 리디아의 집에 머물면서, 두 사람은 매순간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에 처한다. 그럴 때마다 리디아는 본부에서 발행한 안내서에 적힌 대로 행동하려 든다. 한데 그 규칙이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속속들이 말해 주는 게 아니라 무척 혼란스럽다. 반면 세실리는 본부의 존재도 모르고, 안내서를 읽을 줄도 모른다. 그는 본부가 모든 걸 감시할 수는 없다며, 리디아의 규칙을 아무렇지 않게 벗어난다. 그렇다. 세실리와 리디아의 만남은, ‘미지의 자유’와 ‘규율을 따를 때 제공받는 편리와 안정’의 충돌을 상징한다.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무엇을 느끼는지, 그 관계가 어떻게 흐르는지 지켜보다 보면, 이 영화가 품은 가장 날카로운 질문과 마주한다. 과연 자유와 규칙은 평화로운 우정으로 맺어질 수 있을까. 그 질문에 관객 각자의 답을 내놓게 하는 결말이 의미심장하다.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이 영화만의 상징적 세계를 힘 있게 구축하는 연출이 간결하다. 세실리와 리디아가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마치 따로 떨어져 있는 듯 보여 주는 화면 구성과, 갖가지 사운드의 증폭을 통해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리는 연출도 감각적이다. (2021년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장성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