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쇼치쿠 스튜디오의 명배우 모치즈키 유코의 세 번째 연출작. 전일본자유노동조합이 기획한 영화로, 당시 축소 정책이 검토되고 있던 실업 사업에 일용직으로 취업한 여성, 탄광 이직자, 부락민 등 고도 성장기 일본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을 기록성과 서정성을 융화한 영상으로 보여 준다. 물의 질감과 빛이 인상적인 촬영은 조선인 안승민이 담당하였다. (2021년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전후 일본은 ‘실업대책사업’을 통해 실업자를 일용직으로 흡수했다. 하지만 사회 보장보다는 값싼 노동력을 토건 사업에 동원한다는 성격이 더 강했고, 사업 종료 후 규모 축소를 골자로 한 실업대책사업법 개정이 예고된다. ‘이중 실업’의 위기에 맞서 일용 노동자들로 구성된 전일본자유노동조합은 반대 운동에 나서는데 <여기에 살아>도 그 일환으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감독인 모치즈키 유코는 일본영화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친숙한 얼굴이다. 사실 모치즈키 감독은 영화계 활약 전후로 ‘민중예술극장’에 참여하고 사회당 소속 국회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여기에 살아> 전에는 일본 내 타자들을 조명하는 작품을 두 편이나 연출하면서 사회와 영화에 대해 비판적이고 단호한 시선을 보여 주었다. 이 영화는 지쿠호 탄광 폐쇄 후 도시로 이주(당)한 노동자들의 궁핍하고 불안정한 현실과 법 개정 반대 운동이 중심이다. 여성들을 비롯하여 고령자, 차별 지역 출신자, 그들 각각의 가족 구성원 등 다양한 인물의 사정이 후시녹음으로 현장감을 더한 다큐멘터리 화면 속에, 때로는 전문 배우가 출연한 극적이고도 시적인 장면(장르적 연출, 플래시백, 클로즈업 및 시점 숏, 빛과 물의 사용 등) 속에 생생하게 녹아 있다. 나아가 노동자 가정 내 젠더 및 세대별 역할 분리, 노동조합과 가족의 우산 밑으로도 들어가지 못하는 신문 배달원 소년의 포착은 신랄하면서 또 냉철하다. (2021년 제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