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 남과 북은 정치 공작원들을 상호 침투시키고 있으며,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정치 공작원들은 1만 3천여명이 넘는다.
2000년, 63명의 간첩 출신 장기수가 고향인 북으로 송환되어 돌아갔으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향을 했다는 이유로
전향 장기수들은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01년, 이들은 ’폭력에 의한 전향무효선언’을 하고 ’2차 송환’ 운동을 전개한다.
대통령이 다섯 번 바뀌는 20년 격변의 한반도 풍랑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희망과 절망의 롤러코스터 위에 있다.
1992년부터 그들의 곁을 지킨 김동원 감독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휴먼 스토리
줄거리
[ PROLOGUE ]
“절망적 상황에서도 뭔가 꿈틀거리는 것에 관한 영화다.
가끔 돈키호테 같다고 생각했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아무리 부서져도 아무리 얻어맞아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_김동원 감독
[ ABOUT MOVIE ]
장기수들의 희망과 절망 그 30년의 세월!
<송환> 그 20년 후의 이야기!
송환 운동이란,
‘송환’은 6.15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인도적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합의함에 따라 2000년 9월 2일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63인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송환되었으며, 당시 통일부는 송환 조건으로 ‘비전향’을 내세웠다. 장기수들과 인권단체, 그리고 통일운동 관련 단체들이 고문에 의한 강제전향임을 들어 ‘희망자 전원 송환’을 주장했지만 통일부는 송환 조건을 변경하지 않았다.
결국 폭력에 의해 강제 전향을 당한 일부 장기수들은 ‘1차 송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2001년 2월 6일 이들은 ‘장기구금 양심수 전향 취소 선언과 북녘 고향으로의 송환 촉구 기자회견’을 실시해 전향 무효를 선언하고, 이후 2002년과 2004년 국가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두 차례에 걸쳐 “강제전향은 위헌적인 사상전향제도에서 비롯된 국가의 위법 행동으로 이뤄진 일이기에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는 결정을 내려, 장기수들의 응어리진 마음에 다소 위로가 되었다.
(출처: 민병래 작가, “외세가 갈라놓은 땅, 우리민족끼리 통일합시다”, 양심수후원회, 2022.03.28. http://www.yangsimsu.or.kr/board_MgWw45/713761)
<2차 송환>은 고향에 가지 못하는 장기수들을 30년 넘게 곁에서 지켜본 감독이 그들의 ’2차 송환’을 염원하며 그려낸 휴먼 다큐멘터리이다. 김동원 감독과 장기수들의 인연은 1992년부터 시작되었다. 감독은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장기수들의 간절한 염원을 카메라에 담아 전작 <송환>(2003)을 제작했고, <송환>은 한국영화 최초로 제20회 선댄스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2차 송환>은 2000년 9월 장기수 1차 송환 당시 강제로 전향서를 썼다는 이유로 송환 대열에서 배제된 2차 송환 희망자들을 담아낸다. 김동원 감독은 이로써 <송환>에 이어 <2차 송환>까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기수들의 곁을 지킨다. 장기수들은 1차 송환이 이루어진 9월 2일을 기억하며 2022년 9월, 송환 22주기를 맞아 다시 한번 ‘2차 송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송환 22주기를 기념하며 오는 9월 29일에 개봉하는 영화 <2차 송환>은 장기수들과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전주국제영화제,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진정성 가득한 다큐멘터리 명작!
고문을 당하여 강제로 전향서를 썼다는 이유로 ‘1차 송환’ 명단에서 제외된 김영식과, 김영식을 비롯한 장기수들의 ‘2차 송환’ 운동을 곁에서 지켜본 김동원 감독의 30여 년을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 <2차 송환>은 오는 9월 29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예정이다.
<2차 송환>은 2000년 ‘1차 송환’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던, ‘2차 송환’ 운동을 실시하며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김동원 감독의 신작이다.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 갖고 약자들의 이야기에 관심 갖는 김동원 감독은 1992년부터 이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들으며 <송환>(2003)에 이어 <2차 송환>까지 제작하게 되었다. <2차 송환>은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고, 제13회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나왔다. 또한 “그 세월을 견딘 김영식 할아버지의 얼굴은 분단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프로그램노트), “<송환>에서 <2차 송환>이 만들어진 2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는 장기수들에게 여전히 잔혹하고, 절망적이다”(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램노트), “주인공의 인간적인 모습에 끌린 감독의 고백이 있지만, 이 영화는 한 인간이 지킨 신념보다도 그만이 지고 가서는 결코 안 되는 짐을 잊지 않는다”(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램노트), “20년이 넘는 지리멸렬한 시간 동안 작품은 좌초될 위기를 몇 번이나 겪지만 그럼에도 김동원 감독의 의지에 의해 완성된다”(이동윤 영화평론가) 등 국내외 산업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바 있다.
이처럼 개봉 전부터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나며 평단으로부터 호평과 찬사를 받은 영화 <2차 송환>은 9월 29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여 더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송환> <상계동 올림픽> <내 친구 정일우> 外
한국 다큐멘터리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동원 감독!
다양한 사회 문제 및 소수자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를 다수 연출하며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계의 거장으로 자리잡은 김동원 감독의 신작
<2차 송환>을 연출한 김동원 감독은 1991년 다큐공동체 ‘푸른영상’을 설립하여 다큐멘터리를 통한 민중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김동원 감독은 1980년대 한국영화의 정치적 한계 상황을 극복하려는 대안적 영화운동을 통해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는 첫 연출작 <야고보의 5월>(1986)을 시작으로, <상계동 올림픽>(1988), <행당동 사람들>(1994), <미디어 숲속의 사람들>(1993), <송환>(2003), <내 친구 정일우>(2017) 등 예민한 시대인식과 문제의식으로 한국 사회를 다면적으로 조망한 사회참여적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연출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에 파고들며 사회 속 낮은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김동원 감독은 다수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연출하며 실천적 다큐멘터리의 정수이자 한국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동원 감독은 북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간첩’들의 희망과 절망을 담은 <2차 송환>을 촬영하며 “장기수들은 한반도 분단의 역사 속의 비극적 희생자 중 하나이다. 공작임무에도 실패하고 체포되어 수십 년을 옥중에서 보내야 했고 폭력에 무릎을 꿇어 강제 전향을 당했고 북의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가진 것, 배운 것도 없고 생소한 남한에서 ’빨갱이’ 낙인이 찍힌 채 삶을 이어나가야 했던 이들, 이 작품은 그들, 1차 송환에서 배제된 장기수들의 고통과 회한에 공감하는 동시에,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인간미를 드러내고 있다.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무관심했던 우리가 잃어버린 평범한 진실을, 소중한 희망을 그들은 여전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이처럼 한국 다큐멘터리의 기둥, 김동원 감독의 신작이자 <송환>(2003) 이후 20년 간의 이야기를 담은 <2차 송환>의 개봉 소식은 한국 영화 역사에 또 한번 큰 자취를 남길 것으로 기대가 모이고 있다.
[ CHARACTER ]
“단군할아버지 자손들이면 화목하게 삽시다!”
김영식(90)
1962년 남파 후 1964년 체포되어 감옥에서 고문을 받다 강제 전향을 당한다.
이로 인해 2000년 9월 ‘1차 송환’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전향 취소 선언’을 하고 ‘2차 송환’ 운동을 전개 중이다
.
BIOGRAPHY
1933년 4월 17일 강원도 이천군에서 태어남
1953년 결혼하여 1남 1녀를 둠
1962년 3월 29일 공작원 안내선 선원으로 남파
1964년 대법원 판결로 무기징역
1973년 고문으로 강제 전향(40살)
1988년 전주교도소에서 출소
2001년 이후 서울 만남의 집 거주
“이 나쁜 놈들이 우리를 강제로 전향시켰어.”
2차 송환을 기다리는 장기수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 남과 북은 공작원들을 상호 침투시키고 있으며
북으로 돌아가지 못한 남파 공작원은 6446명(1953-1972),
남으로 돌아오지 못한 북파 공작원은 7726명(1953-1999)으로 집계되고 있다.
안학섭
53년 남파 43년 복역
故이성근
빨치산 15년 복역
故강담
65년 남파 24년 복역
故맹기남
58년 남파 30년 복역
故유영쇠
빨치산 29년 복역
박희성
62년 남파 27년 복역
“2차 송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진 않아요.
우리가 열심히 하면 가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후원회원들
‘사단법인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약칭 (사)양심수후원회)에서 활동하는 후원회원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장기수들의 아들, 딸이 되어 생신과 명절을 챙기고
친구처럼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사)양심수후원회
양심수는 장기구금 양심수를 가리키는 말로서 국가보안법, 반공법, 국방경비법, 전시의 비상조치령 그리고 형법상 간첩죄 등으로 구속되어 장기형을 받은 사람으로 공안당국이 공안사범으로 분류하여 차별적 처우와 비인간적 인권탄압을 받아오고 있던 사람들이다. 양심수후원회는 자주·민주·통일운동을 하다가 부당하게 구속된 양심수의 석방운동과 체계적인 후원을 목적으로 창립된 대중적 후원 단체이다. (중략) 양심수후원회는 양심수들에 대한 정기적인 면회 및 편지쓰기, 영치금 및 영치물 보내기 등을 하고 있다. 후원회소식지 등의 선전홍보물을 통해 양심수들의 존재와 참상을 나라 안팎에 알리고 그들의 석방을 위한 활동과 후원 활동 등을 해오고 있다. (출처: (사)양심수후원회 공식 홈페이지 http://www.yangsimsu.or.kr/index.php)
[ DIRECTOR`s NOTE ]
김영식 선생에겐 내가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몇 덕목이 있다.
김 선생은 무엇보다 부지런하다. 잠시도 몸을 쉬지 못한다. 새벽 4시경이면 벌써 뭔가를 하고 계신다. 집에 계실 땐 텃밭에 나와 꽃과 나무들을 돌보신다. 그리고 그건 그의 서울 생활에서 가장 큰 낙이다. 6시경이면 식사, 청소 등 집안일을 깔끔히 끝내 놓는다. 문제는 나와 너무 수면 리듬이 다르다는 점이고, 그래서 그 ‘부지런함’은 내 카메라에 담기지 못했다. 정동진 영화제에서 밤새 술을 먹고 새벽녘에 여관으로 돌아오면 선생은 이미 산책을 끝내고 반갑다는 듯 이런 저런 말을 거신다. 몇 마디 대화 끝에 내가 방으로 도망가면 김 선생은 ‘어휴 심심해. 심심해’ 한숨을 쉬신다. 특히 산골 출신이라 나물 캐기에 아주 선수다. 지리산에 놀러 갔을 때 선생은 새벽녘 혼자 등산을 나가 그 동네 사람들도 모르는 나물들을 한 아름 따 와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기도 했다.
김영식 선생은 동정심이 많다. 길거리를 가다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다. 김 선생 지갑엔 천 원짜리 지폐가 항상 넉넉히 준비되어 있고 그냥 적선만 하는 게 아니라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덴 없는지 잠은 어디서 자는지를 물어보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신다. (이런 장면들도 찍지 못했는데 신기한 건 그런 일은 언제나 카메라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때 일어나고 준비를 하고 있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모습은 그의 ‘귀여움’(?)이다. 그건 아주 ‘토속적인 귀여움’이고 그의 꾸밈없는 성격과 한국적인 얼굴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다행히 찍기 쉽고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송환>에서 감옥에서 고문 받던 이야기를 하면서 “구두 만드는 사람들에게 구두 코를 좀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세상 엄마들에게 ‘나이팅게일 같은 착한 사람들을 낳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며 웃픈 표정을 지으실 장면이나 <2차 송환>에서 “촬영 할 때 진짜로 영화가 되는가 하는걸 알았더라면 진짜로 멋지게 했을 텐데 전혀 몰랐거든”하며 활짝 웃으시는 장면 등은 지루한 편집을 이겨 나가게 하던, 언제 보아도 그의 ‘귀여움’이다. 물론 때론 느닷없이 심술을 부리실 때도 있고 그의 말처럼 ‘한없이 목청이 올라갈 때’도 있다. 또 지나치게 말씀이 길어져 조마조마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겐 그 마저 귀엽게 보이니 어쩜 나와 김 선생은 전생에 연인 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올 봄 아흔을 넘기면서 눈에 띄게 건강이 나빠지시는 것 같아 주변의 걱정이 크다. 여름에 정동진도 함께 가지 못했다. 어떻게 하든 나와 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2차 송환’을 완성시켜 나갈 것이다.
[ EPILOGUE ]
“결코 시스템이나 이념으로 정의될 수 없는 여백이 있다.
다큐멘터리는 그런 걸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편견을 부수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이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_김동원 감독
“절망적 상황에서도 뭔가 꿈틀거리는 것에 관한 영화다.
가끔 돈키호테 같다고 생각했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아무리 부서져도 아무리 얻어맞아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_김동원 감독
[ ABOUT MOVIE ]
장기수들의 희망과 절망 그 30년의 세월!
<송환> 그 20년 후의 이야기!
송환 운동이란,
‘송환’은 6.15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인도적 차원에서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을 합의함에 따라 2000년 9월 2일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63인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으로 송환되었으며, 당시 통일부는 송환 조건으로 ‘비전향’을 내세웠다. 장기수들과 인권단체, 그리고 통일운동 관련 단체들이 고문에 의한 강제전향임을 들어 ‘희망자 전원 송환’을 주장했지만 통일부는 송환 조건을 변경하지 않았다.
결국 폭력에 의해 강제 전향을 당한 일부 장기수들은 ‘1차 송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2001년 2월 6일 이들은 ‘장기구금 양심수 전향 취소 선언과 북녘 고향으로의 송환 촉구 기자회견’을 실시해 전향 무효를 선언하고, 이후 2002년과 2004년 국가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두 차례에 걸쳐 “강제전향은 위헌적인 사상전향제도에서 비롯된 국가의 위법 행동으로 이뤄진 일이기에 강제전향은 전향이 아니다”는 결정을 내려, 장기수들의 응어리진 마음에 다소 위로가 되었다.
(출처: 민병래 작가, “외세가 갈라놓은 땅, 우리민족끼리 통일합시다”, 양심수후원회, 2022.03.28. http://www.yangsimsu.or.kr/board_MgWw45/713761)
<2차 송환>은 고향에 가지 못하는 장기수들을 30년 넘게 곁에서 지켜본 감독이 그들의 ’2차 송환’을 염원하며 그려낸 휴먼 다큐멘터리이다. 김동원 감독과 장기수들의 인연은 1992년부터 시작되었다. 감독은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장기수들의 간절한 염원을 카메라에 담아 전작 <송환>(2003)을 제작했고, <송환>은 한국영화 최초로 제20회 선댄스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2차 송환>은 2000년 9월 장기수 1차 송환 당시 강제로 전향서를 썼다는 이유로 송환 대열에서 배제된 2차 송환 희망자들을 담아낸다. 김동원 감독은 이로써 <송환>에 이어 <2차 송환>까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장기수들의 곁을 지킨다. 장기수들은 1차 송환이 이루어진 9월 2일을 기억하며 2022년 9월, 송환 22주기를 맞아 다시 한번 ‘2차 송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송환 22주기를 기념하며 오는 9월 29일에 개봉하는 영화 <2차 송환>은 장기수들과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전주국제영화제,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진정성 가득한 다큐멘터리 명작!
고문을 당하여 강제로 전향서를 썼다는 이유로 ‘1차 송환’ 명단에서 제외된 김영식과, 김영식을 비롯한 장기수들의 ‘2차 송환’ 운동을 곁에서 지켜본 김동원 감독의 30여 년을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 <2차 송환>은 오는 9월 29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예정이다.
<2차 송환>은 2000년 ‘1차 송환’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던, ‘2차 송환’ 운동을 실시하며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김동원 감독의 신작이다.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 갖고 약자들의 이야기에 관심 갖는 김동원 감독은 1992년부터 이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들으며 <송환>(2003)에 이어 <2차 송환>까지 제작하게 되었다. <2차 송환>은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고, 제13회 대만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와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하는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나왔다. 또한 “그 세월을 견딘 김영식 할아버지의 얼굴은 분단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제4회 평창국제평화영화제 프로그램노트), “<송환>에서 <2차 송환>이 만들어진 2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는 장기수들에게 여전히 잔혹하고, 절망적이다”(제10회 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램노트), “주인공의 인간적인 모습에 끌린 감독의 고백이 있지만, 이 영화는 한 인간이 지킨 신념보다도 그만이 지고 가서는 결코 안 되는 짐을 잊지 않는다”(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램노트), “20년이 넘는 지리멸렬한 시간 동안 작품은 좌초될 위기를 몇 번이나 겪지만 그럼에도 김동원 감독의 의지에 의해 완성된다”(이동윤 영화평론가) 등 국내외 산업 관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 받은 바 있다.
이처럼 개봉 전부터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나며 평단으로부터 호평과 찬사를 받은 영화 <2차 송환>은 9월 29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여 더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할 예정이다.
<송환> <상계동 올림픽> <내 친구 정일우> 外
한국 다큐멘터리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동원 감독!
다양한 사회 문제 및 소수자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를 다수 연출하며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계의 거장으로 자리잡은 김동원 감독의 신작
<2차 송환>을 연출한 김동원 감독은 1991년 다큐공동체 ‘푸른영상’을 설립하여 다큐멘터리를 통한 민중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김동원 감독은 1980년대 한국영화의 정치적 한계 상황을 극복하려는 대안적 영화운동을 통해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는 첫 연출작 <야고보의 5월>(1986)을 시작으로, <상계동 올림픽>(1988), <행당동 사람들>(1994), <미디어 숲속의 사람들>(1993), <송환>(2003), <내 친구 정일우>(2017) 등 예민한 시대인식과 문제의식으로 한국 사회를 다면적으로 조망한 사회참여적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연출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관객의 마음 속에 파고들며 사회 속 낮은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게 만드는 김동원 감독은 다수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연출하며 실천적 다큐멘터리의 정수이자 한국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동원 감독은 북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간첩’들의 희망과 절망을 담은 <2차 송환>을 촬영하며 “장기수들은 한반도 분단의 역사 속의 비극적 희생자 중 하나이다. 공작임무에도 실패하고 체포되어 수십 년을 옥중에서 보내야 했고 폭력에 무릎을 꿇어 강제 전향을 당했고 북의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가진 것, 배운 것도 없고 생소한 남한에서 ’빨갱이’ 낙인이 찍힌 채 삶을 이어나가야 했던 이들, 이 작품은 그들, 1차 송환에서 배제된 장기수들의 고통과 회한에 공감하는 동시에,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인간미를 드러내고 있다. 그들에게 손가락질하고 무관심했던 우리가 잃어버린 평범한 진실을, 소중한 희망을 그들은 여전히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이처럼 한국 다큐멘터리의 기둥, 김동원 감독의 신작이자 <송환>(2003) 이후 20년 간의 이야기를 담은 <2차 송환>의 개봉 소식은 한국 영화 역사에 또 한번 큰 자취를 남길 것으로 기대가 모이고 있다.
[ CHARACTER ]
“단군할아버지 자손들이면 화목하게 삽시다!”
김영식(90)
1962년 남파 후 1964년 체포되어 감옥에서 고문을 받다 강제 전향을 당한다.
이로 인해 2000년 9월 ‘1차 송환’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전향 취소 선언’을 하고 ‘2차 송환’ 운동을 전개 중이다
.
BIOGRAPHY
1933년 4월 17일 강원도 이천군에서 태어남
1953년 결혼하여 1남 1녀를 둠
1962년 3월 29일 공작원 안내선 선원으로 남파
1964년 대법원 판결로 무기징역
1973년 고문으로 강제 전향(40살)
1988년 전주교도소에서 출소
2001년 이후 서울 만남의 집 거주
“이 나쁜 놈들이 우리를 강제로 전향시켰어.”
2차 송환을 기다리는 장기수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까지 남과 북은 공작원들을 상호 침투시키고 있으며
북으로 돌아가지 못한 남파 공작원은 6446명(1953-1972),
남으로 돌아오지 못한 북파 공작원은 7726명(1953-1999)으로 집계되고 있다.
안학섭
53년 남파 43년 복역
故이성근
빨치산 15년 복역
故강담
65년 남파 24년 복역
故맹기남
58년 남파 30년 복역
故유영쇠
빨치산 29년 복역
박희성
62년 남파 27년 복역
“2차 송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진 않아요.
우리가 열심히 하면 가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후원회원들
‘사단법인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약칭 (사)양심수후원회)에서 활동하는 후원회원들.
아무런 연고가 없는 장기수들의 아들, 딸이 되어 생신과 명절을 챙기고
친구처럼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사)양심수후원회
양심수는 장기구금 양심수를 가리키는 말로서 국가보안법, 반공법, 국방경비법, 전시의 비상조치령 그리고 형법상 간첩죄 등으로 구속되어 장기형을 받은 사람으로 공안당국이 공안사범으로 분류하여 차별적 처우와 비인간적 인권탄압을 받아오고 있던 사람들이다. 양심수후원회는 자주·민주·통일운동을 하다가 부당하게 구속된 양심수의 석방운동과 체계적인 후원을 목적으로 창립된 대중적 후원 단체이다. (중략) 양심수후원회는 양심수들에 대한 정기적인 면회 및 편지쓰기, 영치금 및 영치물 보내기 등을 하고 있다. 후원회소식지 등의 선전홍보물을 통해 양심수들의 존재와 참상을 나라 안팎에 알리고 그들의 석방을 위한 활동과 후원 활동 등을 해오고 있다. (출처: (사)양심수후원회 공식 홈페이지 http://www.yangsimsu.or.kr/index.php)
[ DIRECTOR`s NOTE ]
김영식 선생에겐 내가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몇 덕목이 있다.
김 선생은 무엇보다 부지런하다. 잠시도 몸을 쉬지 못한다. 새벽 4시경이면 벌써 뭔가를 하고 계신다. 집에 계실 땐 텃밭에 나와 꽃과 나무들을 돌보신다. 그리고 그건 그의 서울 생활에서 가장 큰 낙이다. 6시경이면 식사, 청소 등 집안일을 깔끔히 끝내 놓는다. 문제는 나와 너무 수면 리듬이 다르다는 점이고, 그래서 그 ‘부지런함’은 내 카메라에 담기지 못했다. 정동진 영화제에서 밤새 술을 먹고 새벽녘에 여관으로 돌아오면 선생은 이미 산책을 끝내고 반갑다는 듯 이런 저런 말을 거신다. 몇 마디 대화 끝에 내가 방으로 도망가면 김 선생은 ‘어휴 심심해. 심심해’ 한숨을 쉬신다. 특히 산골 출신이라 나물 캐기에 아주 선수다. 지리산에 놀러 갔을 때 선생은 새벽녘 혼자 등산을 나가 그 동네 사람들도 모르는 나물들을 한 아름 따 와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기도 했다.
김영식 선생은 동정심이 많다. 길거리를 가다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다. 김 선생 지갑엔 천 원짜리 지폐가 항상 넉넉히 준비되어 있고 그냥 적선만 하는 게 아니라 밥은 먹었는지, 아픈 덴 없는지 잠은 어디서 자는지를 물어보며 몇 마디 대화를 나누신다. (이런 장면들도 찍지 못했는데 신기한 건 그런 일은 언제나 카메라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때 일어나고 준비를 하고 있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모습은 그의 ‘귀여움’(?)이다. 그건 아주 ‘토속적인 귀여움’이고 그의 꾸밈없는 성격과 한국적인 얼굴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다행히 찍기 쉽고 많이 찍을 수 있었다. <송환>에서 감옥에서 고문 받던 이야기를 하면서 “구두 만드는 사람들에게 구두 코를 좀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세상 엄마들에게 ‘나이팅게일 같은 착한 사람들을 낳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며 웃픈 표정을 지으실 장면이나 <2차 송환>에서 “촬영 할 때 진짜로 영화가 되는가 하는걸 알았더라면 진짜로 멋지게 했을 텐데 전혀 몰랐거든”하며 활짝 웃으시는 장면 등은 지루한 편집을 이겨 나가게 하던, 언제 보아도 그의 ‘귀여움’이다. 물론 때론 느닷없이 심술을 부리실 때도 있고 그의 말처럼 ‘한없이 목청이 올라갈 때’도 있다. 또 지나치게 말씀이 길어져 조마조마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겐 그 마저 귀엽게 보이니 어쩜 나와 김 선생은 전생에 연인 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가 올 봄 아흔을 넘기면서 눈에 띄게 건강이 나빠지시는 것 같아 주변의 걱정이 크다. 여름에 정동진도 함께 가지 못했다. 어떻게 하든 나와 그는 아직 끝나지 않은 ‘2차 송환’을 완성시켜 나갈 것이다.
[ EPILOGUE ]
“결코 시스템이나 이념으로 정의될 수 없는 여백이 있다.
다큐멘터리는 그런 걸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편견을 부수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이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_김동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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