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생일날, 납은 명에게 명이나물을 먹여주던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1억 5천만년 전에 묻고 온다. 버스에서 명을 만난 납은 주황색 삽을 건넨다. 따로, 또 같이 하루를 보낸 두 사람은 텅 빈 경기장에서 명이나물을 먹여주는 납의 손가락 화석을 함께 발굴한다. (2023년 제23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연출의도
기후위기의 시대이며, 인수공통감염병의 시대이자, 불확실함의 시대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채 50년도 살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랑이 거처하는 지금-여기의 시대가 모호하고 위태로울 때, ‘사랑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일종의 폭로이자 암시이다.
영화는 이 물음의 앞에,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도착시킨다. 사랑하는 이에게 명이나물을 먹여주던 손가락 화석이 1억 5천만년이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성 속에서 출현할 때, 지금-여기의 시간을 구성하던 선형적 시간은 뒤섞이며 필연적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연대기적 시간은 파쇄된다.
결국 화석은 사랑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 위한 기지다. 죽음을 지시하는 동시에 죽음을 초과하는 화석과의 대면을 통해, 세계가 전혀 다르게 역동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진보하는 미래도 퇴보하는 과거도 아닌, 죽음도 삶도 아닌, 그 이분법에서의 탈바꿈을 시도하려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