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가정에 적응하지 못해 성인이 되자마자 배우의 꿈을 이유로 집을 나와 작은 극단에서 생활하는 승원. 오랜 시간 녹록지 않은 극단 생활을 이어가던 중 7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갑작스레 듣게 되고 충동적으로 극단을 나와 어릴 적 살던 친가족의 집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이복 남매인 가현이 갑작스레 승원을 찾아오고, 자신의 노량진행을 이유로 새엄마의 집으로 돌아오라는 제안을 하면서 승원은 이전의 꿈과 가족에 대해 다시금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2023년 제49회 서울독립영화제)
연출의도
음악을 하시는 한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둘 다 술에 취해 여러 얘기를 하던 중 선생님이 말했다. “승원 씨는 꿈이 있네. 그 나이는 꿈꿔도 돼요. 그게 제일 평범한 거야.” 술에 취해 있을 땐 꿈을 꾸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았다. 술이 깨면 다시 꿈을 위해 살아야만 한다. 꿈이 있는 건 아주 좋은 일이지만 꿈을 위해 사는 건 하루가 지날수록 지쳐만 간다.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어쩌면 허황한 꿈을 보고 의미 없는 달리기를 하는 게 아닐까. 가끔은 꿈이 없는 사람들이 부럽게 느껴진다. 반대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하고 싶은 게 있잖아.” 그리고 그들 다수는 비슷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꿈이 없는 청년이 평범하고 꿈이 있는 청년이 특별하다는 말이 아니다. 꿈의 유무를 떠나 현실의 불가항력이 청년을 달리게 만들고 조금씩 지쳐간다. 불가항력으로 달리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청년은 결국 평범한 개인일 뿐이다. 그들이 달리기를 멈추는 이유는 고요한 호수에 작은 돌을 던졌을 때 물결이 천천히 호수의 경계까지 퍼지듯이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그들에게 멈춘 이유를 물어보면 그들의 입에선 “그냥.”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온다. 그렇게 이루어진 잠깐의 휴식에 그들은 길을 잃는다. 이 사회의 평범한 청년이야말로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이자 가장 친밀하다고 불리는 가정은 평범한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이전 세대의 가정에 비해 현재의 가정은 과연 방황하는 이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만한 힘을 지녔을까. 동시에 현실의 불가항력에 이끌려 가는 청년들은 가정이라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