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중세의 건축가인 페카토와 죄악의 세상을 통해온 길고긴 여행을 다룬다. 엔젤로 페카토는 겉으로는 여느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다른 이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욕망이 가득한 아버지는 그의 어머니를 버리고 달아났으며 페카토는 그런 어머니의 슬픔 속에서 태어났다.
중세 시대에 성당을 지은 건축가 페카토 선생은 7가지 시험을 통해 죄악을 겪는다. 그러한 그가 20세기의 연쇄살인자로 다시 태어나 자신에게 고통을 준 일곱 가지 죄악을 씻으러 돌아다닌다.
히로니머스 보스크 화가의 작품, <7가지 죄악>은 그가 쫓는 ’분노, 자만심, 욕정, 태만, 폭식, 탐욕, 시기’로서 이 요소들은 그의 순진한 정의추구 활동에 한 몫을 하는데...
둥근 판의 동공(瞳孔) 모양의 한 가운데에 예수가 위치해 있고, 그것으로부터 방사상의 둘레에는 비천한 인간들의 죄악상이 그려져 있다. 제롬 보슈(Jerome Bosch)의 "일곱 가지 대죄 The Seven Deadly Sins"라는 이 그림에는 성경에서 모든 악의 근원이라 일컫는 일곱 가지의 죄악상 -- 교만, 분노, 정욕, 나태, 탐식, 탐욕, 시기(우리는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에서 그 본보기를 이미 본 바 있다) -- 이 재현되어 있다. 주인공인 안젤로 페카토는 음란한 아버지와 게으르고 식탐에 가득한 어머니 사이에서, 박물관이 문닫는 월요일에 태어났다. 중세시대에 건축가가 된 그는 대성당 건축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 이 7가지 죄악과 관련된 모험을 하게 된다. 그의 ’죄악여행’은 일곱 개 소제목 아래 차례차례 전개되는 것이다. 자신의 노정을 고통스럽게 한 이 죄악들을 근절하기 위해 그는 20세기에까지 등장해 보슈의 그림을 파괴하려 하지만...
마뉴엘 고메즈의 첫 장편인 <페카토>는 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이야기를 심각하거나 무겁게 풀어가지는 않는다. 초월성의 무게라고 하는 것은 사실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 영화가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관객에게 특유의 황당하고 해괴하며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찬 그로테스크의 미학을 전달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실사와 (각 장章마다 독자적인 기법을 구사한) 애니메이션의 혼합, 흑백 무성영화 형식의 도입과 같은 다양한 형식미의 구사야말로 <페카토>란 영화의 매력의 핵심이 된다. ’용광로의 미학’이라고도 부를 만한 이같은 형식은 아마도 세계 자체를 거대한 카오스라고 보는 이 영화의 주제를 반영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움직이는 그림’인 영화가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마술성’을 되살리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거의 혼란스럽기까지한 형식미와 기괴한 상상력의 결합은 영화 매니아에게는 풍성한 성찬(盛饌), 또는 향연으로 여겨질 만하다. (1998년 제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임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