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끝에 매달린 노인. 사람들은 모두 그가 언제 떨어질지 궁금해 한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오로지 하나의 일에만 주목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관료주의에 길들여져 온 사람들과 그 사회에 대한 풍자를 엿볼 수 있다.
항공 촬영에 이은 크레인 샷으로 잡은 듯한 동유럽의 고도(古都)로 천천히 카메라가 이동해 들어가면 높은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리의 모습이 나타난다. 노인이 지붕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있자 의사와 간호사가 나타나지만 무정한 표정으로 되돌아가고, 길이가 짧은 고가 사다리를 가져왔던 경찰도 구출작전을 포기한다. 노인은 추락한다. 무심한 청소부가 추락한 모든 것들을 잔인하게 주워 담아 사라진다. 도시는 다시 깊은 어둠과 침묵에 쌓인다. 어두운 색감의 종이와 천으로 만든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을 아무런 대사도 없이 느린 리듬으로 편집하고 음울한 음악을 얹었다. 비단 체코의 현실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회정의가 후퇴하는 지구촌 전체의 오늘에 대한 암울한 묵시록처럼 보인다. (2001년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김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