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배우와 TV 토크쇼 조연출자인, 대조되는 성격과 신분을 가진 두 여주인공의 여행담. 여인의 정체성이나 그에 얽힌 사회문제보다는 삶의 다양한 편린들을 다루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제목은 담배 스무 개를 가리키는데, 감독은 이에 대해 "담배 연기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순간과 단편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포르노 배우인 베아트리체가 계속 피워무는 담배는 영화 속 에피소드의 숫자와 동일하다.
장르로만 따지자면 이 영화는 로드 무비, 버디 영화이지만 실상 이런 구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짧은 19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스무 개비>(그런데 왜 제목은 스물일까?)는 웨스턴, 뮤지컬, 페이크(fake) 다큐멘터리, 스릴러, 스플래터, 초현실주의까지 끌고 들어와 장르의 잡탕을 만든다. 장르의 잡탕 속에는 그러나 별 다른 사건은 없다. 단지 두 인물의 여행을 때로는 무미건조하고 때로는 단아하게 보여줄 뿐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여행하는 두 여인, 즉 입에서 담배를 떼지 않고 차갑게 보이며 자기 고집이 강한 베아트리체와, 채식주의자이며 신경질적이고 말 많은 에바가 아니라 담배인지도 모른다. 담배 케이스를 화면에 담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는 에피소드 내내 인물들의 입에서 담배를 떼지 않다가 마지막 장면을 담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연이 되는 것으로 끝맺는다. 더군다나 에피소드 사이의 블랭크가 연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이 영화의 담배는, 감독의 말처럼, 노예화와 타락의 상징이며, 타 버린 순간과 삶의 일부분에 대한 은유인지도 모른다. <스무 개비>는 한 개비의 담배 같은 에피소드를 19개 모아놓고 인생이 그런 거 아니냐며 웃음 짓다가 마지막 한 개피는 관객들에게 직접 선택하라고 권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지나친 과장도, 숨막히는 공포나 참지 못할 유머도 없지만 영화가 끝나면 쉽게 일어설 수 없는 영화, 마르코 포지 감독의 <스무 개비>는 그런 영화이다. (2001년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강성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