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슈나누니는 인도 케랄라 지방의 부유하고 보수적인 집안의 가장이다. 어느 날 아침 아랫 입술에 사마귀가 돋아나기 전까지 그의 인생은 지극히 평온했다. 처음에 그의 아내는 사마귀를 길운의 징조로 생각한다. 사마귀가 점점 커져 가고 아내가 전염되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들 사이에는 긴장이 감돌기 시작한다. 수술을 하는 것이 전통 교리에 위배되기 때문에 크리슈나누니는 치료 받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사마귀가 계속 자라나면서 그의 일상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풍자영화의 대가 무랄리 나이르가 전혀 새로운 형식의 심리 공포영화를 완성했다. 부유한 지주 크리슈난운니는 입술 밑에 난 사마귀가 점차 자라나면서 일상생활이 악몽으로 변해간다.
무랄리 나이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비일상적인 경우를 만났을 때 실제로는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드러내면서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무랄리 나이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불안’과 ‘나약한 본성’은 뽑아도 뽑아도 없어지지 않는 사마귀의 뿌리와도 같다고 본다. 그리고, 그 불안정한 본성은 때로 이성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까지도 초래한다.
<사마귀>가 관객을 매료하는 것은 ‘사마귀’를 ‘불안한 인간심성’의 상징으로 설정하고, 그것이 점차 자라나는 과정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공포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 된다. 물론, 무랄리 나이르는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그 해석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은 듯 하다.(김지석- 2003년 8회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