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의 일그러진 표면과 쇠가 부딪치고, 깎이고, 제련되는 소름 끼치는 소리, 그리고 쇠와 쇠 사이에 흘러 내리는 물과 기름은 감독의 불안감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어릴 때부터 꿈에 등장한다. 감독은 악몽의 원인을 찾아 여기저기 쇠를 깎고 있는 서울에 영세한 공장이 밀집해 있는 청계천 뒷골목을 헤맨다. 그 과정에서 감독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던 할아버지의 경험이 감독의 아버지와 자신에게 대를 이어 내려오는 하나의 집단 무의식으로 감지하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융(Jung)적인 집단 무의식을 자기가 참여하고 관찰한 청계천의 다양한 철공소, 주물 공장, 금형 공장 등을 통해 영상 이미지로 재구성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악몽이 급변의 시기를 겪은 지난 세대의 충격적 경험으로서 대대로 꿈이라는 무의식을 통해 전승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할아버지에게 던지며 불안전한 톤의 내레이션이 펼쳐지는 매우 “주관적”인 다큐멘터리가 시작된다.
신예 미디어 아티스트 박경근의 작품. 감독은 어릴 적부터 반복되는 악몽의 원인을 찾아 쇠를 깎고 있는 서울 청계천 금속공방 뒷골목을 헤맨다. 자신의 악몽이 일본에서 고철 공장을 하다 해방 이후 한국 청계천에서 자리잡은 할아버지로부터 출발했다고 보는 감독은 악몽의 근원을 자신의 뿌리인 할아버지로, 할아버지의 뿌리인 한국 근대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화는 편지형식을 빌은 사념적인 나레이션을 통해 한국 근대사의 충격이 대대로 몸을 통해 전달되는 꿈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을 자연스럽게 한국 근대사의 역사 한가운데로 인도한다. 악몽의 이미지는 과거 빠른 산업화가 남기고 간 잔상일 수도 있고, 청계천의 녹슨 철과 기계의 사운드는 탈산업화되어 가는 사회가 잊어버리고 싶은 악몽의 괴성일 수도 있다. 영화는 쇠의 관점에서 인간의 삶을 재조명하기도 하고, 쇠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쇠의 표면에 반사된 ‘나’의 이미지를 반추하는 방식으로 다큐멘터리 장르에 실험적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2010년 15회 부산국제영화제 - 홍효숙)
연출의도
한국의 산업화는 주체적인 기술발전의 과정이 아니라, 식민지를 통해 타의에 의해 겪으면서, 기계미학을 음미할 시간이 없었다. 또한, 산업화, 기계화, 자동화 기술이 우리의 전통과 조상들에게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심지어, 그러한 변화를 지각하는 신체적인 감각조차 마비되었다. 이는 아직 우리가 (한국인) 근대화를 극복하지 못하는 결과이자 원인이기도 하다.
청계천이라는 한국의 산업화를 대변하는 공간에서 만난 ‘쇠’는 ‘근대적’ 삶의 필수적인 물질이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살기에, 우리의 ‘무의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영화에서 무의식의 세계인 꿈과 청계천 금속공방들과의 필연적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자아의 경험이라기 보다는, 한국이라는 공동체에서 물려받은 또 다른 정신체계에 기반을 둬, 세대를 통해 내려운 무의식을 나타낸다.
기술자들의 작업풍경이 만들어낸 복잡한 리듬과 장단은 우리의 응어리진 무의식을 살풀이하고,내 몸을 통해 전해진 억압된 경험은, 의식적인 예술로, 다큐멘터리로 승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