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드라마, 뮤지컬 감독 쉐라드 안토니 산체스
등급 15세이상관람가 러닝타임 97분 국가 필리핀 조회수 오늘 1명, 총 8명
줄거리
이 작품은 필리핀의 부족들간의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반란군 ‘지지’는 복병들에게 당한 후 젊은 동료들에게 전투의 양상을 가르치며 다음 공격 을 대비하고 있다. 근처 마을에서 ‘준준’과 그의 동료 군인들이 쉬고 있다. 그는 오랫동 안 사랑했던 소녀를 다시 만나려 하지만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그녀 대신 주술사 발얀/ 탁바얀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발얀과 부싸오는 그들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숲 속을 여행한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만남과 기묘한 상황들은 초월이라는 문제에 우리를 주목 시킨다. 안토니 산체스의 명백히 정치적인 투쟁을 다룬 이 영화는 아마도 글라우베 로챠의 계보에 속할 것이다. 토론 과정에서 필리핀의 해방을 위하여 왜 우리는 레닌을 읽어야 하는가에 관 한 (아마도 고다르의 60년대 영화를 연상케 하는) 기나긴 토론이 나오지만, 다른 한편으로 는 신화적인 공간의 몽환적 이미지에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럼으로써 안토니 산체스가 바라 는 것은 무엇보다도 필리핀의 정치적 위기와 함께 정체성의 소멸이라는 근대화에 맞서서 동 시에 문화적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이중의 저항을 다루려한다. 종종 그것이 영화를 보는 우 리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들지만 그러나 그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21세기 아시아 정치영화 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 것이다. (2007년 제1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연출의도
전 영화를 민다나오에서만 촬영하는 용감한 시도를 한 사람은 몇이 되지 않는다. 민다나오 출신의 감독들도 예상되는 비용과 안전문제, 그리고 경쟁력을 고려해 촬영을 꺼린다. 이러한 현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부터 나는 이것이 가능하고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민다나오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기에 이런 이유들로 이 이야기들을 살려내지 못한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다. 민다나오에서 민다나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나를 비롯한 스텝과 배우들은 고통을 치뤄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고생은 가치 있는 것이다.
리뷰
이 영화는 오랜 동안 내전이 진행 중인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전쟁 그 자체의 시각적 재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영화의 관심은 줄곧 전쟁이 남긴 ‘상처’와 그 상처의 재현 불/가능성에 있다. 이 영화가 ‘정치 영화’라면, 그것은 이 영화가 ‘기억의 정치학’ 또는 ‘이야기의 정치학’을 말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전쟁의 외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사화=재현’될 수 없으며, 그것은 단지 복수적인 ‘이야기들’로 파편화되고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정치적 입장이자 윤리적 태도이다. 그러한 윤리적 태도는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특이한 ‘자유간접화법’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영화 속의 낙오한 반군 게릴라 무리의 지도자인 지지의 내레이션이다. 그녀는 이 영화의 ‘언표 주체’이자 ‘언표 행위의 주체(감독의 대리인)’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감독을 대신해서 마을의 오래된 ‘전설(과거의 부족 전쟁의 상처와 관련된)’을 구술하고, 자신이 이끄는 반군 무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카메라가 잡아내는(자신은 결코 볼 수 없는) 마을 주둔 정부군들의 한가로운 일상 위에 개입한다. 감독은 그녀를 통해 말하고, 그녀는 감독을 통해 보고 기억한다. 영화는 그 영문 제목()처럼 4개의 ‘이야기들=기억들(무당, 반군, 숲을 헤매는 두 아이들, 정부군들)’로 ‘짜여’ 있는데, 그 속에서 그녀의 위치는 분명 특권적이다. 그러나 결코 그 모든 이야기들을 일관되게 서사화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중심이 되지는 못한다. 그녀는 무당의 노래를 대신하지 못하며, 숲을 헤매는 아이들 위에 개입하지 못한다. 그녀에게 과거(무당의 노래)와 미래(아이들)는 도달불가능한 절대적 타자인 것이다. 따로 따로 펼쳐지던 3개의 이야기들(무당, 반군, 정부군)이 우연히 ‘조우’할 때 비극적인 ‘외상’이 발생하는데, 숲 속의 아이들은 그곳에 없다. 지지가 이야기들의 파편들을 가까스로 재구성할 때, 무당의 노래는 그것을 벗어난 곳에 있다(영화는 지지의 네레이션으로 시작해서, 무당의 노래로 끝난다). 영화 속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많은 ‘죽은 시간들(dead time)’이 있다. 그 죽은 시간들은 타자들(그들의 기다림, 두려움 등)의 이야기가 말로는 ‘재현’될 수 없으며, 단지 ‘체험’되어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 체험의 순간들과 그 리듬들에는 ‘잔혹한 아름다움’이 있다. (2007년 제1회 시네마디지털서울 - 변성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