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드라마 감독 우밍진
등급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95분 국가 말레이시아 조회수 오늘 1명, 총 8명
줄거리
<코끼리와 바다>는 전염병이 휩쓸고 간 한 어촌 마을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의 삶을 담아내고 있다. 어부 아가우는 아내가 전염병으로 죽고 난 뒤, 정부로부터 300달러의 보상금과 구호기관 의 쓸모 없는 구호품 한 박스를 받고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죽음에 슬 퍼하기보단 매춘부를 만나는 등 새로운 자유를 얻은 것 같아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기를 싫어하며 숲 속을 헤매던 아가우는 우연히 폭포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리 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윤딩은 ‘큰형님’ 롱차이를 따라다니며 순진한 사람들을 속이고 다양한 부정한 일들을 하 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롱차이가 전염병으로 죽은 뒤, 윤딩은 혼자서 자신의 삶을 살 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특별한 목적 없는 인생을 살아온 그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플라워혼 피시, 일명 “행운의 부처” 물고기가 돈을 벌어다 준다는 미신에 빠진 윤딩은 그 물고기가 복권에 당첨되게 해주리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자신을 좋아하게 된 롱차이의 동생 수링을 이용해먹으며 더욱 악한으로 변해간다. 수링에게 속죄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 만, 이상하게도 그의 노력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어긋난다. (2007년 제1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연출의도
<코끼리와 바다>는 내가 자라난 마을에 대한 사적인 비망록이다. 1999년 일본 조류독감이 이포의 고향에 들이닥쳐 돼지 축산업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많은 가족들이 전염병이 지나 간 6개월 후까지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는 이제 전체 지역에 창궐한 SARS와 조류 독감 바이러스의 전조였다. 내게 이 영화는 양심의 마비에 관한 것이다. 어부 아가우와 건달 윤딩은 모두 변두리의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선진국 적인 사고방식이 그 지역을 접수했을 때 소외되기 시작한 계층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세우고 F-1 경주를 주최하자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세상의 눈은 달라졌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 변한 것은 없다. 그들은 물고기가 점점 줄어들어 고생을 하면서도 여전히 강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물고기에 새겨진 복권 당첨 번호를 찾는) 미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그들이 삶에 허덕이는데도 남들은 거의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는 것 같은 정부도 표면적인 도움만을 제공하고, 사람들은 기부를 이용하여 쓰레기와 원치 않는 물건들을 버린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는 쓰나미 피해 후 많은 사람들이 입던 속옷부터 오래된 트로피, 컴퓨터 부품 등의 쓸데없는 물건들과 쓰레기를 기부하자 정부가 그들의 “호의”를 정지시킨 일이 있었다.). 내게는 이 영화와 인물들 모두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 불교의 음양설처럼 딩과 아가우는 그들 행동의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딩이 바닷가에서 팔딱거리는 고기들을 발견했을 때 (전체 영화의 출발점) 그들은 행운이라고 여기지만 곧 그 반대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코끼리와 바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공통의 주제를 담은 작은 영화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현실의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삶의 한 시점에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바보처럼 갇혀 있다. 그러나 삶의 타고난 관성은 그들에게 박차를 가한다. 좋던 나쁘던, 삶은 계속된다.
리뷰
말레이시아 해안가 마을을 배경으로 한 두 개의 사연. 느닷없이 전염병이 찾아왔다. 젊은 건달은 자기를 비호하던 동네 형을 잃었고, 나흘 간 고기잡이를 나갔던 중년의 어부는 아내를 잃었다. 건달은 점점 더 초라해질 뿐 아니라 악랄해지고, 어부는 아내의 죽음으로 보상받은 정부의 돈을 매춘에 쓰며 자포자기하듯 일탈한다. 이 두 사연은 하나로 묶이지 않으며 각자 흘러간다. 다만 이것은 동시기 같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상실의 사연을 지닌 그들이 바로 그 곳에서 따로 또 같이 지금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코끼리와 바다>는 상실의 시간과 장소에 대한 영화다. 말레이시아의 감독 우밍진은 그들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결코 버려두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칭마이 고승에게 축복받았다는 행운의 물고기를 사서 부귀영화를 얻고 싶어 하는 건달이 그 물고기를 사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까지 인신매매하는 행동과 죽음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어부가 언뜻 코끼리를 본 그 자리에서 타인의 생명을 구해내는 행동이 교차할 때, 이 영화는 삶의 명암을 동시에 쥐고 질문을 던진다. 희망은 가능한가. 동세대 아시아에서 지역성에 기반 하여 상실의 문제를 다루는 젊은 영화감독이라면 지아장커와 차이밍량과 그리고 이제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대개는 이해하려 들지 않는 리티 판의 영화 중 하나와 본의 아니게 비교될 수밖에 없다. 영화 속 인물들이 살고 있는 풍속과 자연과 그 대지의 공기를 영화적으로 마시고 뱉으며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들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영화 <코끼리와 바다>가 열대 우림의 습기와 썩어빠진 물과 먼지 나는 도로와 사람이 사고 팔리는 잔인한 퇴락의 현장을 정서적으로 담을 때 앞서 열거한 아시아 영화 작가들의 이름을 같이 생각해보게 된다. 아핏차퐁처럼 시작한 영화는 차이 밍량의 리듬과 지아 장커의 관점 어느 사이에서 파랑을 일으킨다. 건달은 저 섬에 돌을 갖다 놓고 오면 원하는 걸 해주겠다는 소녀의 말을 듣고 시도하지만 파도에 떠밀려 볼품없이 실패한다. 한편 전염된 닭을 갖다 버려 텅 비어 있던 그 닭장 안에서 어부는 신기하게도 어느새 부화한 병아리를 본다. 절망과 희망의 교차. <코끼리와 바다>는 상실에 빠진 말레이시아 하층민의 두 가지 풍경을 수려한 앵글로 담아낼 뿐만 아니라, 이것이 마치 어디선가 전해 내려오는 민초들의 슬픈 설화처럼 느껴지게까지 한다. (2007년 제1회 시네마디지털서울 - 정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