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벤치의 철학자 A. J. 바데라가 점성술과 명상의 여러 방법에 대해 설파한다. 15분 가까이 단 하나의 쇼트로 촬영한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화면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고 움직인다. 낯선 사람에게 카메라가 접근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 (2008년 제2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리뷰
디지털 시대의 애니메이션이란 어떤 것인가? 단편 < 그래스하퍼 >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들 중 하나일 수 있다. 전후 미국의 많은 아방가르드 애니메이션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새로운 작품의 창작과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개발을 동시에 병행하는 이 작품의 감독 밥 새비스턴의 재능은, 그 자신의 이름으로보다는 다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 웨이킹 라이프 >(2001)와 < 스캐너 다클리 >(2006)의 기술적, 예술적 핵심을 이룬 소프트웨어 ‘로토샵’의 개발자가 바로 밥 새비스턴이다.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던 그의 애니메이션 영화 < 그래스하퍼 >는 시기적으로 두 장편 사이에 만들어진 경이로운 작품이다. 작품이 직접 보여주다시피, 밥 새비스턴의 로토샵 기술은 아날로그 시대에 실재의 3차원적 동작을 2차원 평면 위의 그림으로 옮기는 수준이었던 로토스코프의 단순한 연장선상에 있지 않다(물론 아날로그 시대에도 그런 수준 이상의 로토스코프가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여기에서 감독은, 인물과 그를 둘러싼 외적 세계의 형상 모두를 모든 것이 끊임없이 흐느적거리는 듯하면서 아직 무엇인가를 완전히 놓아 버리지는 않(으려고 하)는 듯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시공간적 유동성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이키델릭과 사이버펑크가 교차하는 유동적인 세계 앞에서 우리는 로토샵이 디지털과 특히 인터넷 시대의 현기증 나는 풍경을 포착하는 새로운 카메라 렌즈일 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닉 파크의 < 동물 인터뷰 >(1989)와 유사한 전략을 밟고 있는 이 단편에서 감독이 인터뷰하는 인물은 공원 벤치 위의 철학자로 알려진 실존 인물 A.J. 바데라이다. 약 15분 동안 편집 없이 철학자의 생각과 의식과 감정이 애니메이트되며 가시화되고, 동시에 내면과 외면의 경계를 넘어 철학자 자신을 포함하는 영화 속 세계에 영향을 끼치거나 변화를 일으킨다. 밥 새비스턴은 자신이 개발한 테크놀로지를 통해 철학자의 담론을 실천하고자 시도하는 것 같다. 이때 기술은 본래 그 자신이었지만 분리된 예술과 비로소 하나가 된다. (2008년 제2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 김준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