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20대 후반 어느 날 갑자기.
가만히 방바닥을 바라보는데 담요 무늬가 열렸다. 시간이 열리고 공간이 열렸다. 진공상태. 아~ 그렇구나. 말은 줄고 몸은 바쁘고 잠은 오지 않고. 신분증을 서랍에 넣고 나도 넣어버렸다. 사거리에도 지하철에도 공원 벤치에도 존재와 존재의 만남은 없다. 다들 어디간걸까?
폐쇄병동이다. 병력도 가족력도 없는 상상해본적도 없는 평범한 내가 조울증? 그게 뭐야?
도대체 내가 왜? 이 세상을 내가... 어떻게 살아가지? 그래도 일해야지. 미안한 삶은 싫다.
하루하루 발 앞이 절벽이다. 한 발 딛는다. 또 딛는다. 절벽은 환영이다. 절망은 환영이다.
(2012년 제12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연출의도
영화를 만드는 첫 번째 이유는 조울증을 알리고 예방하기 위함에 있다.
조울증이 발병하면 감정의 조절이 어려워 본인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까지 힘든 시간을 겪는다. 사회는 점점 자극이 넘쳐나고 그럴수록 감정 외에도 행동이나 감각의 조절도 어려워지는 환경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름을 무엇으로 붙이든 증상도 현상도 여러 가지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사실 같은 것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조울증 환자가 100명이면 원인도 치료과정도 100가지라고 전문가는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용어의 설명이 아닌 실제 경험자로서 조울의 상태를 담고자 했다.
2010년까지 복용하던 약을 의사와 상담을 하여 점차 줄이고 현재는 끊은 상태이다. 병원치료를 받으면서도 미술치료와 춤테라피 등 다른 여러 치료를 찾아서 겸했던 10여년의 과정, 프로그램으로 끝내지 않고 생활하면서 혼자 그림 그리고 춤추는 것은 치료에 있어 외부(약이나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치료의 주체는 나 자신이라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병이 일어났던 뿌리도 치료가 가능했던 뿌리도 모두 일상임을, 그래서 일상은 떠날 곳이 아니라 꿈이 이루어지고 이상이 실현되는 장임을 말하고 싶다. 다행인 것은 조울증이 언제 또 발병할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삶이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