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벽지가 가득한 방. 한 로봇노동자가 깨어난다. 거울 앞에선 그는 자신을 깨어나게 해준 나비와 만나게 된다. 모든 로봇노동자는 자신의 나비가 태어나야 비로서 깨어나게 되므로, 그들은 자신의 나비에게 감사하고 최선을 다한다. 이내 관리자에게 인도된 그는 자신의 일을 열심히 시작한다. 그러나 그와 다르게 그의 나비는 단순한 일에 관심이 없다. 그는 창밖 너머로 푸르게 빛나는 하늘을 향해 날고 싶고, 그의 이상향인 꽃을 향해 떠나고만 싶어한다. 나비가 날갯짓을 해야 앞을 볼 수 있는 로봇은 나비가 날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자 관리자에게 들킬까 봐 한숨만 쉰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관리자는 로봇의 나비에게 특별한 교육이 필요함을 느끼고 행동에 들어간다. (2012년 제17회 인디포럼)
연출의도
’Bleach’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관한 애니메이션이다. 산업화 시대를 거쳐 전자미디어 시대가 되면서 개개인은 과거보다 한층 심화된 사회 시스템과 환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이윤 추구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그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상품과 정보를 생산해내고 있으며, 거기에 필요한 동력의 안정적인 공급을 요구한다. 이러한 동력은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의 노동력에서 공급되기에, 사회는 극대화된 노동력을 추출하기 위한 다양한 시스템을 구축하며,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시킨다. 이와 같은 목적의 시스템 속에서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자아는 존중 받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고유의 색(色), 즉 이상은 항상 자유와 도전을 지향하지만, 이를 담아두고 있는 우리의 몸(體), 즉 현실은 우리가 속한 시스템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복종과 나테에 안주하도록 유도되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이윤추구가 잘 되는 아이템이 이상, 즉 색(色)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색(色)은 환영이고 거짓이다. 사회화된 몸(體)은 자신의 색(色)을 충실하게 미메시스(Mimesis) 하여 거짓된 환영을 생산해내지만, 정작 자신의 진정한 색(色)과 거짓된 색(色)은 구분조차 불가능해지고, 사회는 더욱더 쉽게 개개인을 도구화해간다.
이러한 세태의 단면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재조명하여, 우리가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 현재의 삶과 사회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낟. 그럼으로써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분주함과 순응 속에서 한걸음 물러나, 진정한 삶과 사회상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