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1. 집.
집안. 가벼운 실랑이와 함께 외출준비 중인 두 여자가 있다. 경남과 미영이다. 그리고 커다란 전동 휠체어 위에 앉아있는 땡땡이 무늬 양말을 신은 한 사람. 희영. 손가락만 몇 개만 움직일 수 있어서 미영의 도움을 받아 외출준비를 한다. 작은 원룸에서 나가는 세 여자의 뒷모습은 다정하고 익숙하다. 현관문 밖으로 까르르거리는 웃음소리가 멀어지고, 벽에 걸려 있는 달력엔 날짜마다 형광펜으로 빼곡하게 표시 되어있다.


2. 프롤로그-성북동 희영씨
시끄러운 차 소리와 함께 희영과 경남의 집 외관이 보인다. 8차선 도로 옆에 자리한 연식이 있어 보이는 오피스텔 건물이다. 파란하늘에 있는 노란색 오피스텔 건물이 제법 잘 어울린다. 도로 위로 차들이 바쁜 듯 오가고, 교통표지판에 ‘성북동’이라는 글씨와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그 글씨 아래로 ‘희영씨’ 라는 타이틀 자막이 나타난다. ‘성북동 희영씨’ 라고 이어서 읽힌다.


3. 일상. 그리고 나에게 묻는 질문.
공연장 뒤편 대기실. “희영씨 찾았어요?” 희영과 친구들이 태블릿pc로 ‘숨은그림찾기’ 게임 중이다. 쉽지 않은지 헤매는 희영. 하지만 꼭 해낸다는 의지를 내보인다. 공연에 앞서 긴장 보단 의연하게 즐기고 있는 모습니다. 이어 공연이 시작된다. 무용극이다. 걸을 수 있는 배우는 두 다리로, 휠체어를 탄 배우는 휠체어를 탄 채로 춤을 춘다. 희영도 휠체어를 타고 느리게 혹은 빠르게 춤을 춘다. 표정이 밝다.
집 안. 침대 위 인터뷰. 더디지만 또박또박 말한다. 시설에서 나와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야 잘 살았다고 생각이 들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시작하게 된 것이 연극이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로 울려 퍼지는 박수 소리 위로 시장소리와 풍경이 오버랩 된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집근처 삼선시장에 들러 미영의 보조로 장을 본다. 그 시장골목 사람들은 전부 그녀를 알고 있다.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다. 시장에 있는 중국집이 세일 중이었는데, 세일 마지막 날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다. 미영이 운 좋게도 마지막 날에 싸게 먹는다며 즐거워하자, 그 말을 들었는지 사장님이 앞으로 늘 그 가격에 주겠다고 약속했고 정말 약속을 지키셨다. 촬영중 시장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중국집 사장님. 어색한 듯, 하지만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희영의 병명을 농담으로 받아치며 웃는다.
장애인 극단 판의 연습실. 새로운 공연을 위해 단원들이 빙 둘러 앉아 대본 리딩이 한창이다. 심심했는지 한쪽 구석에서 경남이 공깃돌 숫자를 헤아린다. 수를 잘 헤아리지 못해서 실수를 한다. 단원의 핀잔에 민망한지 혀를 내밀며 허허 웃어버린다. 열심히 연습중인 단원들 뒤로 어느새 잠들어 있는 경남.


4. 불굴의 기지(機智) - 희영의 성격
희영은 26살에 요양원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15년 후, 같은 요양원에 있던 경남과 자립했다. 둘은 성북동 어느 오피스텔에서 2년 째 동거중이다. 돌아오는 12월 이면 집 계약기간이 끝난다.
단촐한 집의 풍경 위로 외출중인 세 여자. 이유는 모르지만 즐거워 보인다. 경남은 주황색 선글라스를 쓰고 한껏 멋을 부렸다. 삐져나온 잔머리 하나도 못 보겠는지 미영에게 정리해 달라고 한다. 둘은 동갑내기 이지만 이럴 땐 꼭 한참 동생 같다. 경남을 돌보는 미영의 모습 또한 언니처럼 살갑다.
미영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둘이 노점상에서 껌을 산다. 경남이 손발이 되고 희영이 머리가 되어서 물건을 사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다. 뒤이어 미영이 나타나 날이 더운 희영을 위해 적신 손수건을 목에 둘러준다. 희영은 은행에 볼 일이 있다. 은행입구엔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가 있지만 휠체어가 올라가지 못한다. 포기하고 미영이 대신 은행 일을 보러 들어간다. 하지만 희영은 혼자서 주변 행인들에게 부탁하여 기어이 은행에 입성한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휠체어를 올리고는 흩어진다.
시설에서 처음 나왔을 당시엔 활동보조 시간으로 한달에 100시간을 받았다. 그럼 하루에 3시간 꼴인 셈인데 뇌병변 1급 장애인에겐 현실성 없는 시간이다. 때문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병원을 갈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 시설에 있을 당시 봉사활동을 왔던 아이들에게 연락을 했고, 겨우겨우 병원을 다녀왔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지금은 휠체어에서 침대위로 오르내리는 것을 보조하는 리프트가 있지만, 없었을 당시엔 여자 활동보조 혼자서 그 일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희영은 바깥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몇 번을 거절당하고 나서 터득한건 연인과 함께 있는 남자에게 부탁을 하면 잘 도와준다는 것. 함께 있는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인 것 같다.


5. 머리하는 날.
지하철 플랫폼. 희영과 미영이 함께 리프트를 타려고 한다. 리프트가 고장나서 지하철 직원이 오는 중이다.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고 오갔을 시간 아무리 기다려도 직원은 오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환승을 했다. 짜증 한번 낼 법하지만 오히려 미소가 번지는 희영.
처음엔 수동휠체어를 탔었다. 자립하고 나서 전동휠체어가 생겼을 때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움이 얼마나 기뻤던지 몇 번을 이야기해도 질리질 않는다. 수동 휠체어 일 땐 두려웠던 이동이 오히려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다.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자유롭다. 지하철에 내려 처음가보는 미용실로 향한다. 예전에 파마를 하고 싶어서 시설 좋은 미용실에 간적이 있었는데 거절당했다. 이곳은 지영에게 소개받은 미용실로 반신반의 하며 들어간다. 익숙한 듯 희영의 자리를 마련하는 미용사. 파마를 준비하는 모습 또한 너무나 익숙한데, ‘다른 언니들(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많이 오기 때문이라고.
사실, 희영은 아프고 나서 파마가 처음이다. 하고 싶었는데 장애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아 늘 포기 했었다. 미용실에 있는 여자 모두가 얼마나 하고 싶었겠냐며 안타까워한다.
비장애인에 맡게 제작된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는 건 영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는다. 파마를 끝내고 드라이한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자기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든다. 행복한 웃음이 난다. 미용실 유리문에 멋진 머리스타일을 한 여자들의 사진 이 걸려있다. 누구나 가끔은 기분전환으로 머리를 하고 싶고, 누구나 그런 멋진 모습의 자신을 꿈꾸기 마련이다.


6. 시설에서 나올 때.
지영이 합류하여 셋이 함께 미용실을 나와 식사를 하러 간다. 경사로가 있는 음식점을 찾았는데, 또 경사로가 말썽이다. 지영의 휠체어는 거뜬히 올라갔는데, 희영의 휠체어는 오르지 못한다. 한참동안 휠체어와 씨름중인 둘에게 행인들이 어느새 모여들어서는 도와주곤 뿔뿔이 흩어진다.
음식점 안. 배정받은 시간이 적어 활동보조와 동행하지 못한 지영을 촬영자가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보조한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둘은 같은 시설에서 6년간 지낸 친구사이. 지영이 5년 일찍 시설을 나왔다. 시설에서 지낸지 10년쯤에 함께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 둘 지역사회로 자립해 나가자, 나가야 한다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운 장애 때문에 꼬박 3, 4년을 고민만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처음으로 용기의 말을 건넨 이는 그녀를 돌보던 두 분의 보모였다. 한번 나가서 살아보라고, 그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말에 어디선가 용기가 샘솟아 났고,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어렵게 마음을 굳혔지만 시설에선 자립에 비협조적이었다. 당시 자립을 도와주던 ‘시설장애인자립생활지원팀’의 활동가 미소와 함께 시설과 싸웠고, 어렵게 자립할 수 있었다.
시설측이 시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좀 더 존중해주고 인격체로 다뤄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행복해 질 수 있을 텐데…….


7. 희영과 경남의 가족. 그리고 시설에 들어가게 된 사연.
성북구립회관. 희영과 단원들은 곧 있을 순회공연을 위한 연습이 한창이다. 경남은 한쪽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구경중이다. 심심해 졌는지 가방 속 물건을 꺼내 보여주기 시작한다.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가방 안에서 한참을 가지고 다닌 듯 헤진 종이를 꺼낸다. ‘엄마 찾는 거.’ 라고 말한다. 꼬깃꼬깃한 종이를 펼치자 그 안엔 아주 앳된 그녀의 사진과 글씨가 적혀있다. 이름과 입소일자, 입소당시나이…… 그리고 엄마의 이름이 적혀 있다. 15살에 미아가 되어 시설에 들어가게 된 경남이다. 자신의 이름과 엄마의 이름을 띄엄띄엄 읽는다. ‘김경남’과 ‘김경희’는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글자이다.
희영은 15년 전에 아이를 버리고 시설로 들어간 장애여성을 연기중이다. 연기 중에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울어버린다. 이 캐릭터는 그녀의 이야기이다. 결혼 후 아이를 낳았는데, 갑자기 병이 심해졌고 아이는커녕 자신도 돌볼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결국 남편과 5살짜리 아이를 두고 시설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이 죽을 때까지 있어야 할 곳이라 체념하며 지내던 어느 날, 남편에게 이혼 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식조차 듣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공연 연습을 하면서도 몇 번이나 울컥울컥 생각이 나서 힘들다. 하지만 막상 이야기 할 땐 오히려 웃으면서 의연하게 이야기 한다. 이렇게 이야기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슬픔을 혼자 삼켰을지 모를 일이다.


8. 전국 순회공연.
극단 판의 식구들은 전국 순회공연 길에 오른다. 배우 대부분이 휠체어를 타기 때문에 낡은 소형 승합차로의 이동은 불편 할 테지만 누구하나 불만 없이 꼭 여행 떠나는 사람들처럼 밝은 표정들이다. 첫 공연은 충북 옥천에 있는 ‘청산노인복지관’. 변변한 공연장 하나 없는 곳이지만 동네어르신들과 유치원 어린이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첫 외부공연임에도 실수 없이 공연을 마쳤고, 관객의 반응도 뜨거웠다. 공연이 끝나고 산책하고 있는 희영에게 할머니 관객 한분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눈다. 수고했다고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마치 자신의 엄마를 만난 것 같다며 희영이 환하게 웃는다.
강원도 양양의 지체장애인 보호시설 ‘정다운 마을’과 충북 충주의 ‘숭덕 재활원’. 시설을 떠나온 지 2년 만에 배우가 되어 다시 시설을 찾게 되었다. 그곳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본다. 아직까지 시설에 있었다면 정체되어 변함없는 삶을 살았을 텐데, 지금은 배우가 되어 연기를 통해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는 것. 시설에서 처음 나왔을 때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의 답을 찾았다.


9. 그냥 동네 사람.
옥천, 충주, 국산, 양양, 부안, 목포 마지막으로 제주에 이르는 긴 순회공연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채순 활동보조가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다. 된장찌개에 나물과 김치로 차려진 밥상이다. 침대에 누운 채 보조를 받아 식사를 한다. 곧 이어 경남이 야학에서 돌아와 오늘 수업시간에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 집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다.
자신 같은 사람도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 그렇게 동네사람들의 일부가 되고, 모르는 것들은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살고 싶다는 희영. 어쩌면 너무나 쉬울 수도, 어쩌면 한없이 어려울 수도 있을 이 삶의 방식을 그녀는 꾸준히 노력으로 지켜왔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 할 것이고.


10. 에필로그
집 계약 만기를 1달 앞두고 경남이 길음에 있는 임대 아파트에 입주자로 선정되었다. 12월 둘은 이사를 했다. 희영은 극단 일을 잠시 쉬고 있으며, 현재 연애중이다.
(2013년 제11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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