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만에서 한 소금창고를 보고는 사진을 찍으며 다가갔다. 점점 대상의 실체가 뚜렷하게 들어오자, 그것은 기대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정작 소금창고라 믿었던 것은 조류 관망대였던 것이다. 사진을 출력하고 한 장씩 차근하게 사진을 쌓아 올리며 접착시킨다. 사진촬영대의 상황은 포커스가 어긋나 있는 상태의 카메라가 사진을 주시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자 사진이 쌓인 만큼 사진은 두께를 가지며 렌즈로 다가온다. 최종적으로 500장 가까이 되는 사진은 의식의 궤적을 은유 하듯 기억은 동결화되어 주관성, 모호성에 등을 돌리고 만다. 그리고 촬영자 본인이 기억하려 했던 소금창고가 아님을 사진의 덩어리가 증명하고, 그것은 기억의 불완전성과 애매모호함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어버린다.
(2013년 제10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작품의도
우연히 순천 만에서 시야에 들어온 어느 창고를 확인하려 사진을 찍게 되었다. 소금창고라 생각하고 다가갔지만,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실체의 모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혹여 기억도 그런 성질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까? 사람은 스스로의 기억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것만을 보려 한다. 난 이러한 의식의 과정을 기술하려 일종의 시선의 궤적화 작업을 생각해 내게 되었다.
작품의 제작 프로세스 자체는 기억을 쫓아가는 나와 다시 관찰자로서 그것을 취급하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모색하는 사고의 프로세스로 의식화된다. 시간 축 위에서 영상의 흐름은 기억과 풍경을 기제로 촉발되는 양의적 의식구조를 형성시키고 그것이 경로화 되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구조로 드러나는 상황들이 묘사되고 있다. 즉 실체의 사실화를 증명하려 한 촬영행위와 대립적으로 그 장면을 촬영한 영상의 관계는 오히려 기억주체의 대상과 동일시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진(물질적 공간)화 된 시간은 사진 쌓아 올리기를 통하여 실물세계의 물질적 두께를 형성하는 동시에 영화적 공간에서 시각적 운동의 단위로서 이중구조를 만들어 낸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저마다 소중한 기억의 대상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실제로는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
기억은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와도 같다. 우리 자신들의 기억은 항상 우리주위에서 맴돌며 기억주체와 관계 맺으려 한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서 기억의 실체를 확인하려, 그것을 탐색하거나 상기하려 한다면 오히려 흩어져서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