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투쟁을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에서 점차 밀양에 거주하면서 삶의 문제로써 송전탑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으로 옮겨가면서, 편견이나 오해로 왜곡되어 있는 밀양투쟁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고자 한다. 또한 송전탑 공사가 완료되어 가는 골안마을, 공사가 시작된 도곡마을,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용회마을. 공사가 차례로 진행되는 세 마을의 이야기는 마을입구에서 중턱 그리고 산 정상까지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이는 공사를 전후로 할매들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심경을 그리는 한편, 초고압 송전탑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구조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2014년 제16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줄거리
연출의도
밀양에서 주민들의 투쟁을 지켜보았던 미디어활동가/감독들은 지면을 통해서, 짧은 희망버스를 통해서, 가까운 활동가들을 통해서 접했던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밀양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발견하게 되었고 더불어 격렬한 투쟁의 한 가운데 있었던 그 투쟁의 주체인 ‘할매’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생을 지니고 있는 한 여성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밀양 옴니버스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국가폭력에 맞서서 송전탑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나이든 여성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지, 또는 어떤 마음으로 싸움을 지속하는지를 기록하고자 한다.
작품해설
영화는 밀양투쟁을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점차 밀양에 거주하면서 삶의 문제로서 송전탑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으로 옮겨가면서 편견과 오해로 왜곡되어 있는 밀양투쟁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또한 영화는 공사가 완료되어 가는 골안마을, 공사가 시작된 도곡마을,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용회마을, 차례로 공사가 진행되는 세 마을의 이야기는 마을 입구에서 중턱 그리고 산 정상까지의 이미지로 연결한다. 그러면서 공사가 차례로 진행되는 세 마을의 이야기를 통해 공사 전후 할매들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심경을 그리는 한편, 초고압 송전탑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구조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희우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얼마 전 밀양과 청도의 주민들이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찾아왔다. “에너지 3대 악법을 개정하고 송전탑을 뽑아낼 때까지 투쟁할 것”을 밝히기 위해 서울로 온 첫날 저녁, 주민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연대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광화문에 온 것이다. 광화문 네거리 주위에 늘어선 빌딩의 조명이 유난히 눈부셨다. 저 불을 밝히려고 주민들을 그렇게 짓밟았나……. 밀양은 늘 우리를 일깨운다.
밀양은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이루어졌던 대규모 경찰병력 투입과 그에 맞선 주민들의 힘겨운 투쟁으로 기억되는 듯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싸움이 끝났다고 여기기도 한다. 계획되었던 송전탑이 모두 세워졌다는 소식까지 확인하고 나면 더욱 그렇다. 결국 주민들이 졌구나……. 그러나 밀양의 주민들은 조용히 말한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나는 이 문장을 조금 바꿔서 말하고 싶기도 하다. “그녀들은 질 수가 없다.” 물론 그녀들은 이길 수도 없었다. 거대하고 부조리한 에너지 시스템과 그것을 떠받치는 폭력은 마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는 밀양의 마을들을 관통하는 송전탑 건설 계획을 세웠다. 왜 그리로 송전탑이 지나가야 하는지 그들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결정이다.” 그 후로 주민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합의 또는 ‘미’합의일 뿐이었다. 결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반복될 뿐이다. 왜 우리 마을입니까? “지역이기주의야!” 꼭 필요한 겁니까? “너희도 전기 쓰잖아!”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까?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하겠다!” 대답을 듣지 못하고 부서진 질문들. 그 자리에서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고 있었다. 송전탑은 땅에 꽂히기 전에 밀양 주민들의 삶에 꽂혔다. 일상이 달라졌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몸을 움직이던 사람들은, 한전 직원이 산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시간에 따라 투쟁을 하게 됐다. 달이 차고 기우는 시간에 따라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한전과 경찰이 세우는 ‘작전’에 따라 생사를 오가는 전장으로 끌려나갔다. 그러나 그녀들은 포기할 수 없다. 각각의 지번을 가진 땅에 송전탑이 꽂혔더라도, 각자의 삶에 꽂힌 송전탑을 그대로 두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땅에 깊은 뿌리를 내린 나무가 흙으로부터 물을 길어 올려 새잎을 피우며 스스로를 보살피듯, 그녀들은 오늘도 삶으로부터 송전탑을 밀어낸다.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힘도 여기에서 나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기를 멈출 수도 없는 것이다. 한전과 정부는 밀양의 문제를 ‘송전탑’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문제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송전탑’은 폭력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일 뿐이었다. 모두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핵발전의 이름이고, 정부가 결정한 대로 따르지 않는 국민들을 진압하는 경찰의 이름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주민들을 무시하는 모욕의 이름이다. 밀양의 주민들이 다른 여러 현장을 찾아다니며 ‘반가운 손님’이 되기를 자처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송전탑을 막기 위해 싸우는 동안 주민들은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결국 함께 살자 약속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는 것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들로부터 배운다. 모두가 졌다고 생각할 때 질 수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밀양의 ‘반가운 손님’이 되면 얻게 되는 것은, 그래서 삶이다. 우리도 기꺼이 송전탑을 함께 뽑아내야 하지 않을까.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프로그램노트
이 영화는 밀양의 반가운 손님이 되고자 하는 다섯 편의 단편이 담긴 옴니버스 작품이다. 여기에서 반가운 손님이 된다는 표현은 ‘연대’라는 말로 좀 더 구체화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섯 편의 단편들이 각각 제목과 저마다의 감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소개되지 않는데, 이들은 마치 여럿이 도와 하나의 큰 힘을 이루는 연대의 모양새를 닮으려는 듯 자신의 이름과 크레딧을 갖는 대신 한편의 영화 속으로 섞여들어 간다.
이중 나머지들과 가장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첫 번째 에피소드인데, 여기서 우리는 밀양 대신 쌍용자동차투쟁과 먼저 만난다. 쌍차 투쟁에 몸담고 있는 실제 조합원 문기주 씨를 중심으로 작은 술자리를 연출한 이 에피소드는 우리의 연대를 막고 있는 복잡한 지형도를 볼 수 있게 한다. 투쟁하는 형님을 걱정하는 마음은 투쟁에 대한 이해나 나아가 투쟁 간의 연대에 대한 이해에 닿지 않는다. 후배는 밀양 투쟁에 연대하러 가는 형님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인식의 거리는 한국사회 다양한 운동 및 입장들의 사회적 고립을 드러낸다. 옆에 있는 사람을 걱정해주며 함께 낚시를 하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훈훈한 풍경은 투쟁하는 사람의 일상이 될 수 없고, 투쟁하는 사람의 일상은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다. 이제 영화는 어딘지 헛헛한 술자리를 뒤로 하고 밀양으로 떠난다.
이어지는 장면들을 보면 목표는 사건을 향한 객관적인 고발에 있지 않으며, 국가나 관련 기관의 입장을 반영하는 균형감각보다는 투쟁하는 이들의 마음이 부각된다. 수많은 고생들에도 죽지는 않던 명(命) 많은 인생을 되짚어가며 일제 식민지 때보다 더 힘든 지금 이것이 전쟁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도곡마을 김말해 할머니의 통찰은 깊은 울림을 전한다. 아무 것도 아닌 이것이 왜 이리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것일까?
밀양의 투쟁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포기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자신들에 대한 권리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투쟁이다. 이는 헛헛했을 쌍차 투쟁의 어떤 날을 보듬고 응원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 메시지는 밀양 주민이나 쌍차 노동자를 향한 탄압이 함께 살아감을 잊은 것이라는 진실을 전한다. 영화는 우리가 쉽게 잊곤 하는 연대의 감수성을 건네고 그것으로 투쟁의 정당성을 설득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투쟁하는 현재를 응원하면서 공사 반대에서 공사 중지 및 취소 싸움으로 바뀌는 밀양 투쟁의 변화를 밝게 맞이하고자 한다. 모든 이름이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은 밀양의 투쟁을 이루는 구조이자 전체이며, 그렇게 밀양의 제사는 모두를 위한 연대의 기도가 된다.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밀양에서 주민들의 투쟁을 지켜보았던 미디어활동가/감독들은 지면을 통해서, 짧은 희망버스를 통해서, 가까운 활동가들을 통해서 접했던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밀양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발견하게 되었고 더불어 격렬한 투쟁의 한 가운데 있었던 그 투쟁의 주체인 ‘할매’들이 자신만의 고유한 생을 지니고 있는 한 여성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밀양 옴니버스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국가폭력에 맞서서 송전탑 반대투쟁을 하고 있는 나이든 여성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지, 또는 어떤 마음으로 싸움을 지속하는지를 기록하고자 한다.
작품해설
영화는 밀양투쟁을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점차 밀양에 거주하면서 삶의 문제로서 송전탑을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으로 옮겨가면서 편견과 오해로 왜곡되어 있는 밀양투쟁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또한 영화는 공사가 완료되어 가는 골안마을, 공사가 시작된 도곡마을, 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인 용회마을, 차례로 공사가 진행되는 세 마을의 이야기는 마을 입구에서 중턱 그리고 산 정상까지의 이미지로 연결한다. 그러면서 공사가 차례로 진행되는 세 마을의 이야기를 통해 공사 전후 할매들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심경을 그리는 한편, 초고압 송전탑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구조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희우 인천인권영화제 반디활동가)
인권해설
얼마 전 밀양과 청도의 주민들이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찾아왔다. “에너지 3대 악법을 개정하고 송전탑을 뽑아낼 때까지 투쟁할 것”을 밝히기 위해 서울로 온 첫날 저녁, 주민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연대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광화문에 온 것이다. 광화문 네거리 주위에 늘어선 빌딩의 조명이 유난히 눈부셨다. 저 불을 밝히려고 주민들을 그렇게 짓밟았나……. 밀양은 늘 우리를 일깨운다.
밀양은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이루어졌던 대규모 경찰병력 투입과 그에 맞선 주민들의 힘겨운 투쟁으로 기억되는 듯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싸움이 끝났다고 여기기도 한다. 계획되었던 송전탑이 모두 세워졌다는 소식까지 확인하고 나면 더욱 그렇다. 결국 주민들이 졌구나……. 그러나 밀양의 주민들은 조용히 말한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나는 이 문장을 조금 바꿔서 말하고 싶기도 하다. “그녀들은 질 수가 없다.” 물론 그녀들은 이길 수도 없었다. 거대하고 부조리한 에너지 시스템과 그것을 떠받치는 폭력은 마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국가는 밀양의 마을들을 관통하는 송전탑 건설 계획을 세웠다. 왜 그리로 송전탑이 지나가야 하는지 그들은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결정이다.” 그 후로 주민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합의 또는 ‘미’합의일 뿐이었다. 결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반복될 뿐이다. 왜 우리 마을입니까? “지역이기주의야!” 꼭 필요한 겁니까? “너희도 전기 쓰잖아!”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까?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하겠다!” 대답을 듣지 못하고 부서진 질문들. 그 자리에서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고 있었다. 송전탑은 땅에 꽂히기 전에 밀양 주민들의 삶에 꽂혔다. 일상이 달라졌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몸을 움직이던 사람들은, 한전 직원이 산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시간에 따라 투쟁을 하게 됐다. 달이 차고 기우는 시간에 따라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한전과 경찰이 세우는 ‘작전’에 따라 생사를 오가는 전장으로 끌려나갔다. 그러나 그녀들은 포기할 수 없다. 각각의 지번을 가진 땅에 송전탑이 꽂혔더라도, 각자의 삶에 꽂힌 송전탑을 그대로 두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땅에 깊은 뿌리를 내린 나무가 흙으로부터 물을 길어 올려 새잎을 피우며 스스로를 보살피듯, 그녀들은 오늘도 삶으로부터 송전탑을 밀어낸다.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힘도 여기에서 나왔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기를 멈출 수도 없는 것이다. 한전과 정부는 밀양의 문제를 ‘송전탑’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문제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송전탑’은 폭력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일 뿐이었다. 모두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핵발전의 이름이고, 정부가 결정한 대로 따르지 않는 국민들을 진압하는 경찰의 이름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주민들을 무시하는 모욕의 이름이다. 밀양의 주민들이 다른 여러 현장을 찾아다니며 ‘반가운 손님’이 되기를 자처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송전탑을 막기 위해 싸우는 동안 주민들은 삶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결국 함께 살자 약속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는 것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들로부터 배운다. 모두가 졌다고 생각할 때 질 수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밀양의 ‘반가운 손님’이 되면 얻게 되는 것은, 그래서 삶이다. 우리도 기꺼이 송전탑을 함께 뽑아내야 하지 않을까.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프로그램노트
이 영화는 밀양의 반가운 손님이 되고자 하는 다섯 편의 단편이 담긴 옴니버스 작품이다. 여기에서 반가운 손님이 된다는 표현은 ‘연대’라는 말로 좀 더 구체화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섯 편의 단편들이 각각 제목과 저마다의 감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소개되지 않는데, 이들은 마치 여럿이 도와 하나의 큰 힘을 이루는 연대의 모양새를 닮으려는 듯 자신의 이름과 크레딧을 갖는 대신 한편의 영화 속으로 섞여들어 간다.
이중 나머지들과 가장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은 첫 번째 에피소드인데, 여기서 우리는 밀양 대신 쌍용자동차투쟁과 먼저 만난다. 쌍차 투쟁에 몸담고 있는 실제 조합원 문기주 씨를 중심으로 작은 술자리를 연출한 이 에피소드는 우리의 연대를 막고 있는 복잡한 지형도를 볼 수 있게 한다. 투쟁하는 형님을 걱정하는 마음은 투쟁에 대한 이해나 나아가 투쟁 간의 연대에 대한 이해에 닿지 않는다. 후배는 밀양 투쟁에 연대하러 가는 형님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인식의 거리는 한국사회 다양한 운동 및 입장들의 사회적 고립을 드러낸다. 옆에 있는 사람을 걱정해주며 함께 낚시를 하거나 술잔을 기울이는 훈훈한 풍경은 투쟁하는 사람의 일상이 될 수 없고, 투쟁하는 사람의 일상은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다. 이제 영화는 어딘지 헛헛한 술자리를 뒤로 하고 밀양으로 떠난다.
이어지는 장면들을 보면 목표는 사건을 향한 객관적인 고발에 있지 않으며, 국가나 관련 기관의 입장을 반영하는 균형감각보다는 투쟁하는 이들의 마음이 부각된다. 수많은 고생들에도 죽지는 않던 명(命) 많은 인생을 되짚어가며 일제 식민지 때보다 더 힘든 지금 이것이 전쟁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도곡마을 김말해 할머니의 통찰은 깊은 울림을 전한다. 아무 것도 아닌 이것이 왜 이리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것일까?
밀양의 투쟁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포기하지 않으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자신들에 대한 권리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투쟁이다. 이는 헛헛했을 쌍차 투쟁의 어떤 날을 보듬고 응원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 메시지는 밀양 주민이나 쌍차 노동자를 향한 탄압이 함께 살아감을 잊은 것이라는 진실을 전한다. 영화는 우리가 쉽게 잊곤 하는 연대의 감수성을 건네고 그것으로 투쟁의 정당성을 설득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투쟁하는 현재를 응원하면서 공사 반대에서 공사 중지 및 취소 싸움으로 바뀌는 밀양 투쟁의 변화를 밝게 맞이하고자 한다. 모든 이름이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은 밀양의 투쟁을 이루는 구조이자 전체이며, 그렇게 밀양의 제사는 모두를 위한 연대의 기도가 된다.
(채희숙/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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