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되는 강의 아픔을 이야기한 <모래가 흐르는 강>에 이은 자연과 우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강가에서 지내며 너무 늦진 않았을까 상심에 잠기거나 출입금지 이정표에 길을 잃곤 하지만 마냥 헤매지 않게 하는 건 공사소리에도 멈추지 않은 주민들의 호미소리, 우정의 연대로 찾아드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강을 지켜낼 수 있을까? (2014년 제19회 인천인권영화제)
작품해설
낙동강 제1지천 내성천, 낙동강에 1급수를 공급하고 있는 강줄기다.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모래강인 이곳이 상류에서는 영주댐 공사, 하류에서는 4대강 공사로 파헤쳐 지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홍수가 없는 이 지역에 홍수대비를 명목으로 ‘내성천 하천정비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강에게서 모래를 빼앗고 사람에게서 터전을 빼앗고, 살아 있는 것들에게서 평화를 빼앗고 있다. 그곳, 내성천에서 심고, 가꾸고, 지켜내고, 거두며 삶을 지탱해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 그이들을 잃어 가고 있는 우리를 이야기한다. (쉔 인천인권영화제 소금활동가)
인권해설
지율스님의 두 번째 내성천 다큐인 <내성천, 물 위에 쓰는 편지>에는 수몰지구를 지키는 할머니들과 지율스님 그리고 강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첫번째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이 강의 아픔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반면 두번째는 강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는 영주댐으로 수몰위기에 처한 내성천의 상류 운포구곡 동호마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 마을은 2009년부터 영주댐 공사가 시작해 지금 겨우 서너 가구만이 집을 지키고 다른 이들은 도시로 혹은 다른 농토를 찾아 떠났다. 집들은 무너지고 나무는 베어져 나가져 소박한 시골마을은 흉흉하다. 하지만 열여섯 열여덟에 시집와 70년 넘게 그 마을에 산 할매들은 그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 마을에서 산 정 때문이기도 하고, 도시에 나가봤자 적적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할매들은 을씨년스러워진 동네의 빈터들을 억척스레 일군다. 영화의 주인공 중 한명인 장판댁 할매는 평생 한번도 자신의 밭을 일군 적이 없다가 사람들이 수몰로 인해 마을을 떠나자 떠난 이웃들의 집터를 밭으로 일군다. 또 일찌감치 도시로 떠난 이장댁 할매는 아침마다 첫차로 이미 무너진 자기 집터를 찾아와 뭐라도 심는다고 하루종일 일을 한다.
감독인 지율스님도 내성천변을 떠날 수 없는 사람 중 하나이다. 스님은 2008년 4대강 공사 시작 직전 낙동강으로 내려와 강의 변화를 계속 기록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영주댐 공사 현장에 텐트를 치고 살고 있는데, 어느덧 2014년이 되었다. 스님은 자신이 거칠어지는 공간에 스스로 발을 딛고 이 폭력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영주댐 현장은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폭력에 의해 고통 받는 곳이다. 스님은 현장에 대한 가장 지독한 목격자이며 기록자일 것이다. 스님은 현장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폭력에 저항하고 극복하는 비폭력의 가장 무서운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스님의 사진과 영화작업, 그리고 기록들은 증언이자 미래를 위한 약속이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고 오롯이 살며 기록한 기억이야말로 운동의 뿌리이며 미래의 진정한 싹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은 자연을 자원화하고 인간을 땅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근대국가의 토건사업은 일찍이 자본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체계적인 침탈 수단이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자연의 뿌리를 잘린 사람들은 토착성을 잃어버리고 부평초 같은 노동자로서 자본을 닮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강요되었다. 뿌리야말로 우리 시대의 대안이 되지 않을까?
작년 개봉된 <모래가 흐르는 강>에는 500년 된 동호마을의 당산나무가 가지들이 처참히 잘린 채 실려 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2년이 지난 지금 그 나무는 영주댐 사무소의 한 켠 거대한 철제 우리에 갇힌 채 죽어 있다. 그들에게 당산나무는 돈이 되어주지 못한 채 은폐될 주검이 되었지만 우리에겐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의 유산이다. 폭력의 현장과 기억을 수장시키고자 하는 국가와 자본은 그 나무와 지율스님의 기록이 몹시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뿌리처럼 악착같이 기억을 가지고 있고, 기억의 힘에 의해 미래를 틔우려 하고 있다. 지율스님과 함께 내성천 운동을 지속해온 내성천의 친구들은 ‘내성천 한 평 사기 운동’을 재개했다. 물론 이 땅을 구입하는 목적은 일차적으로 하류에 계획된 공사를 막는 일이고 둘째는 그 땅을 ‘강’에게 돌려 보내는 일이다. 또한 그 곳을 다시 습지화 하기 전에 일부분은 ‘4대강 기록관’으로 쓰려고 한다. 그래서 이 영화가 ‘물 위에 쓰는 편지’이다. 그 편지를 누가 받아 볼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 곳을 지키기로 한 사람들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함께 강이 다시 강답게 흐르도록 강의 색이 원래의 색을 찾도록, 먹황새가 내년 겨울에도 내성천을 찾도록 말이다. (심규한, 박은선 내성천의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