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황철민
러닝타임 99분 국가 한국 평점 10 조회수 오늘 1명, 총 17명
줄거리
오랜 세월, 돌고 돌아 일본 교토에 있는 조선의 항아리의 운명에 사로잡힌 파친코 업자 정조문. 그는 살던 집을 헐어 그 자리에 미술관을 지었고, 재단 법인을 만들어 30년 동안 수집해온 골동품 1700여 점을 모두 헌납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현재 고려 미술관은 계속되는 적자누적으로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재일 조총련 사업가, 정조문은 왜 그토록 문화재 수집에 열을 올렸을까? 왜 정조문은 그토록 애타게 그리던 조국 땅을 한 번도 밟지 않았을까? (2015년 제7회 DMZ국제다큐영화제)
리뷰
재일교포 정조문은 파친코로 번 돈을 투자해 조선의 문화유산을 모은다. 그가 살던 집을 헐어 지은 고려미술관에는 1700여 점의 골동품이 있다. 정조문은 간단하지 않은 삶을 산 희대의 인물이다. 그 인물의 자취를 그의 주변관계를 통해 풍부하게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이 다큐멘터리는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일 양국의 관계뿐만 아니라 남한과 북한, 일본 내의 재일교포들 간의 관계를 가로지르는 정조문의 삶의 신념과 문화재에 대한 헌신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2015년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김영진)
제작과정
2013년 여름, 세 명의 남자가 의기투합했다. 불교미술사학자 최선일 박사가 평소 흠모하던 재일교포 고(故) 정조문(1918~1989)과 그가 설립한 고려미술관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고 싶다고 황철민 감독에게 제안했고, 황 감독은 영화평론가 최광희를 작가로 영입했다.
일제시대에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난 정조문은 8살의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와 온갖 고생 끝에 빠칭코 사업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전재산을 일본에 흩어져 있는 한국 문화재를 수집하는 데 썼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 평생 모은 1,700여 점의 귀중한 문화재를 기증한 고려미술관을 일본 교토의 자택에 설립했다. 고려미술관은 그의 후손들이 이어 받아 운영하고 있지만, 재일 교포 사회의 변화와 함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미 4반세기 전에 세상을 떠난 정조문의 인생과 고려미술관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취지는 충분하다는 결론을, 제작진은 내렸다. 문제는 제작비였다. 약 5천만 원의 제작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고심하던 제작진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최초로 한국과 일본의 민간인들로부터 후원금을 모집해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잘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제작진은 영화 제작의 취지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추진위원들을 영입해 나갔다. 캘리그래퍼 김성태가 영화의 타이틀을 만들어주겠다고 나섰다. 헉스뮤직의 김금훈 대표가 영화의 음악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해금 연주자 신날새가 영화의 주제곡인 ‘임진강’을 녹음해주는 등 각자의 재능을 가진 뜻있는 이들의 성원들이 이어졌다. 고은 시인이 한국쪽 추진위원장을, 고려미술관장이 일본쪽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한국과 일본에서 300여 명 가까운 사람들이 영화의 취지에 공감하며 제작비 후원에 나섰고, 영화는 제작비를 조달해가며 본격적인 촬영에 나섰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난 지금,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 <정조문의 항아리>는 제작진이 정조문의 삶과 뜻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 교토를 방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가 자수성가하게 된 계기가 된 빠칭코 사업이 재일교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탐문한다. 정조문이 한국 문화재에 빠져들게 만든 조선 백자와의 최초의 만남을, 그 아들이자 고려미술관 정희두 상임이사의 증언을 통해 재연한다. 정조문은 문화재 수집에 그치지 않고, 재일 작가 김달수, 재일 사학자 이진희, 일본 작가 시바 료타로, 고대사학자 우에다 마사아키 등 국적을 불문한 지식인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일본 내 한국 문화재에 대한 일본인들의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도 앞장섰다. 조총련에 소속돼 있던 그는, 민족 학교 건설 위원장을 맡기도 했지만, 북한의 우상화와 남한의 독재를 동시에 혐오했다. 그래서 눈을 감을 때까지 남한도 북한도 조국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따라서 방문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지인들과 더불어 부산이 보이는 대마도를 방문해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다큐멘터리는 고 정조문 선생이 남긴 영상 자료와 더불어, 유족들을 비롯해 그와 만나고 교류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정조문이 품었던 조국애의 정체를 탐문한다. 그리고 정규 교육이라곤 초등학교 3년 밖에 받지 못했던 그가, 재일 동포이자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며 어떻게 대쪽 같은 신념을 유지했는지를 조명한다. 영화 <정조문의 항아리>는 정조문이라는 인간과 그가 남긴 고려미술관에 다각도로 접근하면서 희미해지고 있지만 이 시대에 여전히 유효한 선비 정신의 정수를 재구성할 것이다. 정조문이 생전에 보여준 ‘연대’의 정신을 본받아, 한국과 일본인들이 하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제작된 <정조문의 항아리>는 각종 영화제에 출품한 뒤 내년 하반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순차, 또는 동시 개봉할 예정이다.